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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몰락 직전의 스위스 시계 산업을 살린 '스와치'의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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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業스토리]1970년대 '쿼츠 시계' 등장으로 아시아에 밀린 스위스

니콜라스 하이에크, ASUAG-SSIH 구원투수로…10년 만에 다시 '왕좌' 탈환

스와치 액세스·스와치 페이 등 첨단기술 이용한 웨어러블워치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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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스위스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약 400년 동안 전 세계 시계 산업을 이끌고 있는 국가다. 2017년 기준 시계 시장에서 롤렉스, 오메가, 티쏘, 라도 등 스위스 기반의 시계 브랜드 시장점유율은 50%를 상회할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는 스위스 시계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1969년 세이코가 쿼츠 시계를 제작한 것. 당시 스위스 시계 브랜드들은 힘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스와치(Swatch)'의 등장으로 약 10년 만에 다시 정상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장인 정신'만 고집하다 밀려난 스위스 시계

16세기 귀금속 착용이 금지되면서 시계 산업에 뛰어든 스위스는 1800년대 전 세계 시계 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하면서 세계 최대 시계 산업국으로 부상했다. 공공재 개념이었던 시계가 개인 주머니에 들어갈 때도, 주머니에서 다시 손목으로 옮겨갈 때도 스위스는 늘 시계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1900년대 초 스위스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롤렉스와 오메가, 론진 등의 등장은 스위스 시계 산업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1969년, 쿼츠의 등장으로 전 세계 시계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다. 당시 일본 시계 브랜드 세이코가 기계식보다 300배 정확하고 가격은 저렴한 쿼츠 시계를 내놓으면서 스위스의 시계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시계들은 낮은 임금과 마진을 무기로 손목시계 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귀족들과 부자들만 지닐 수 있었던 시계가 처음으로 대중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위스는 '장인 정신'만을 고집하며 여전히 태엽을 감아 사용하는 고가의 시계만을 생산했고, 1980년대에는 전 세계 시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손목시장에서 10%대만 점유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명품 시계들은 여전히 스위스산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롤렉스를 제외하면 모두 파산 직전이었다. 특히 100년 전통의 오메가와 티쏘를 보유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와 미도, 론진을 보유한 ASUAG(시계산업스위스협회)는 순식간에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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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하이에크 [출처=스와치]


오메가·론진을 살려낸 시계산업의 대부 '니콜라스 하이에크'

이때 사업가였던 니콜라스 하이에크(Nicolas Hayek)가 등장했다. SSIH와 ASUAG의 주 채권단인 스위스 은행이 니콜라스 하이에크가 설립한 컨설팅 기업 하이에크 엔지니어링에 컨설팅을 의뢰했고 하이에크는 스위스 시계 산업 전반을 진단하고 시계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저가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에는 스위스 시계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훼손한다며 반대했으나 하이에크는 채권단을 설득했다.


하이에크는 시계를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아시아 시계 브랜드들의 가격경쟁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고, 이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그가 생각한 차별화는 '디자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계 가치의 척도는 '정확도'에 있었다. 스위스가 1800년대 시계의 왕국이었던 영국을 밀어낸 이유도, 스위스가 세이코 쿼츠시계에 밀려난 이유도 모두 시계의 '정확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이에크는 시계 제작 기술이 평준화되면서 정확도는 더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 디자인적 요소를 넣는 역발상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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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스와치가 출시한 손목시계


처음에는 ASUAG의 자회사인 에타(ETA)에서 1.98mm의 초박형 시계를 개발해 냈다. 처음에는 판매망을 가진 기존의 브랜드에서 출시하려 했으나 고급화 이미지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채권단들의 의견에 따라 '스와치'라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출시했다. 현대적인 디자인에 기존 브랜드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색상의 시계를 내놨고, 출시 1년 만에 100만 개가 팔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에도 6주에 한 가지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을 가진 시계를 출시해 '시계 = 패션 소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심었다.


다만 스와치의 성공에도 채권단은 스와치의 시계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일본 회사에 매각하려 했다. 이때 하이에크는 ASUAG-SSIH 주식 51%를 매입해 SMH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시계 사업을 본격화했다. 1998년에는 지금의 이름인 '스와치 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블랑팡, 브레게 등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다각화했다. 당시 스와치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 25%를 달성하면서 스위스는 다시 시계 산업 왕좌의 자리를 되찾았다.


지금까지도 스와치는 전 세계 1위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까르띠에, IWC, 피아제 등을 거느린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이나 불가리, 태그호이어 등을 보유한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도 시장점유율로는 스와치 그룹에 상대가 안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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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과 아날로그 시계의 만남

스와치의 시계 혁신은 1위 자리를 탈환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5년에는 시계 내부에 메모리칩을 삽입해 인터랙티브한 기능을 내세운 '스와치 액세스'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스키장에서 시계로 스키 패스 기능을 하는 용으로 만들어졌는데, 2003년에는 한 단계 발전해 교통카드 기능을 탑재한 시계를 내놨다. 최근에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모두를 대체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결제시스템 '스와치페이' 기능을 넣은 스와치 액세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2004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휴해 뉴스, 스포츠 정보, 날씨, 운세, 주가 시세 등을 조회할 수 있는 ‘스와치 파파라치(Swatch Paparazzi)’를 개발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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