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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공매도는 개미의 눈물 먹고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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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2000이 깨졌습니다. 3개월만이라도 공매도 금지를 부탁드립니다."

한 직장인 투자자가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매도 시스템이 주가를 더 내리게 하고 있다"며 공매도 규제 청원을 올렸다. 열흘도 안 돼 2만5000여명이 서명했다. 최근 국내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자 '공매도(空賣渡) 금지' 여론이 거세다. 금융 당국도 비상 대책(컨틴전시 플랜) 가운데 하나로 "언제든지 공매도 규제 방안을 시행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주가가 떨어지고 시장이 불안하면 공매도가 입방아에 오르곤 한다. 개인 투자자들은 "외국인과 기관 등 공매도 세력이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시세를 조종한다"며 공매도 폐지를 요구한다. 과연 공매도는 멀쩡한 종목의 주가를 떨어뜨려 개미들에게 피해만 입히는 나쁜 제도일까.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상관관계 '모호'

공매도란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빌려서 판 다음, 실제로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되사서 갚고 차익을 챙기는 투자 기법이다. 예를 들어 주당 10만원일 때 빌려 판 주식을, 9만원으로 내렸을 때 되사서 돌려주면 차익이 1만원 남는다. 급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어 위험을 헤지(hedge·대비)하는 투자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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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주가가 하락세를 타고 있을 때는 공매도가 늘어나 단기적으로 낙폭을 더 키울 수 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당시 미국·유럽 등에서 일시적으로 공매도 거래를 중지시켰다. 시장이 공포감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공매도가 '불난 집에 부채질' 격으로 주가 하락 폭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매도가 많은 종목이 반드시 주가가 떨어진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올해 국내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서 공매도 비중이 높은 10종목 중 4개 종목은 연초 이후 주가가 떨어졌지만 6개 종목은 오히려 주가가 올랐다. 아모레G(-29%), CJ대한통운(-20.4%), 쌍용양회(-11.8%) 등 주가가 떨어진 종목은 대부분 실적 우려나 대북 테마주 이슈 등이 발목을 잡았다.

공매도 기법을 자주 쓰는 기관과 외국인도 돈을 벌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주식을 빌려서 팔았는데, 예상과 달리 주가가 오를 경우 팔 때보다 비싼 값에 주식을 되사서 갚아야 한다. 그 차액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공매도하기 위해 빌린 주식은 보통 30~60일 이내에 상환해야 한다.

◇"공매도 금지해도 코스피 하락"

한국에서도 2008년과 2011년 주가지수가 급락하자 공매도를 일시적으로 규제했지만, 이 같은 조치가 주식 시장의 하락을 막지는 못했다. SK증권에 따르면, 2008년 공매도 금지 기간에 코스피는 3.4% 하락했고 2011년에는 12.1%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공매도에 과대 평가된 주식의 거품을 빼는 순기능이 있다고 평가한다. 특정 종목 주가가 정당한 이유 없이 기대감만으로 단기 급등했을 때, 공매도가 매도 주문을 늘려 주가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내려가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이 최근 주가가 폭락한 신라젠을 두고 "공매도가 없었으면 거품이 더 크지 않았겠느냐"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상 실패 가능성을 반영한 공매도가 없었다면 주가가 더 치솟는 바람에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더 컸으리라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내에서 공매도를 제한했을 때, 시장의 변동성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유동성도 함께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공매도가 위기 때 변동성을 키울 수도 있지만, 시장에 유동성을 불어넣어 거래를 활성화하는 양면성이 있다는 의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매도 규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극단적 상황에만 시행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지금은 공매도를 금지할 만한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경화 기자(hw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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