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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테마진단] 골목상권이 지역발전의 유일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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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일하며 일상을 여유롭게 즐기고 이웃과 소통하는 삶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소비의 공간도 도심의 상업 지역에서 동네 상권으로 옮겨졌다. 동네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동네 삶의 질이 아파트 브랜드만큼 중요해졌다.

로컬 지향은 글로벌 현상이다. 서구 사회는 이미 1970년대부터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사회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미국과 일본의 탈물질주의 현상은 가속화됐다. 탈물질주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지역 생산과 지역 소비 중심으로, 즉 로컬 지향 생산과 소비 문화로 변화해야 한다.

한국의 로컬 지향은 2000년 중반 골목상권의 부상과 궤를 같이한다. 동네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획일적인 백화점과 쇼핑몰보다는 개성 있고 다양한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는 골목을 좋아하는 소비자다. 물질적 풍요와 함께 탈물질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이 로컬 지향과 골목길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골목상권은 유행이 아닌 라이프 스타일이다. 인위적인 공간보다는 자연스럽게 일상을 즐기고 공유하는 동네를 선호하는 시대적 변화다. 그 결과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동네 브랜드가 부상했다. 다양한 동네 라이프 스타일 향유에 대한 욕구는 압구정동, 청담동 등 강남권역 이외의 서울 전역과 지방에서 동네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10년 전에 상상할 수 있었을까? 연남동, 상수동, 합정동, 망원동, 후암동, 해방촌, 성수동, 왕십리, 뚝섬이 동네 브랜드가 되리란 것을. 광주 동명동, 양림동, 수원 행궁동, 강릉 명주동, 전주 풍남동, 대구 삼덕동 등 동네 브랜드도 활기찬 골목상권으로 지역 발전을 견인한다.

골목상권이 들어서면 동네가 브랜드가 되고, 동네가 브랜드가 되면 창조 인재와 기업이 들어온다. 서울을 대표하는 연남동, 성수동을 한번 걸어보자. 음식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코워킹, 코리빙, 건축·디자인 사무소, 복합문화공간, 공방, 독립 서점, 예술가 스튜디오 등 크리에이티브 공간이 가득하다. 소비의 공간이었던 골목상권이 스타트업, 소상공인, 예술가가 집적된 한국형 창조도시로 진화한 것이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골목문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성과 연결된 고유한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만드는 문화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공간을 하나의 예술의 장, 창작의 장으로 인식한다. 여행자가 골목상권과 동네 가게에 몰리는 배경에는 이런 콘텐츠의 힘이 작용한다.

1세대 골목상권 중 홍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산업 생태계로 성장했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없이도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와 기업을 창출한다. 홍대에는 스몰 브랜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일난다, 젠틀몬스터, YG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대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창조기업을 배출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가로수길, 경리단길, 삼청동 등 일부 상권은 급성장으로 인해 공실 증가, 정체성 상실 등 심각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상권 위기의 원인으로는 임대료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국내외 사례는 다양한 임대료 정책을 제시한다. 임차인 권리 강화와 임대료 규제가 가장 빠르게 임대료를 억제하는 방법일 것이다. 문화시설과 공공임대상가 투자, 건물주가 참여하는 공동체 문화, 임대차 정보와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과 공유를 통한 임대차 거래비용 인하 등도 임대료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상권의 위기를 골목상권 전체의 위기로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전국적으로 골목상권은 증가 추세다. 경리단길은 '몰락'했을지 모르지만 경리단길이 속해 있는 이태원 상권은 후암동, 삼각지, 한남동으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향후 골목상권의 숙제는 골목상권이 주는 지역 발전의 기회를 살리는 일이다. 강북의 중심 골목상권과 지방 도시의 원도심은 홍대와 같은 도시산업 생태계로 육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는 골목상권 기반 도시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한 지역 발전이 유일한 희망이다. 인구 100만명당 하나의 도시산업 생태계가 가능하다면, 전국에 50개의 홍대를 조성할 수 있다. '홍대 50'을 우리 경제의 새로운 슬로건으로 제안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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