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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김앤장 변호사 “양승태와 일제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 나눴다” 법정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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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기업 측을 대리한 한상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69)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71)과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사석에서 여러차례 나눴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대화 내용에는 피해자들 손을 들어준 2012년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고 선례에 어긋나 한일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거나, 박근혜 정부 외교부가 김앤장 뜻대로 대법원에 의견서를 내는 방안 등도 포함됐다.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 변호사는 이같이 증언했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4기수 후배이고,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해 친분이 있었다.

경향신문

지난 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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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를 나눈 때는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을 파기환송한 직후인 2013년이다. 당시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들 패소인 원심 판결을 깨고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외부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난 한 변호사는 ‘소부 판결이 나오기 전에 주심인 김능환 전 대법관이 귀뜸을 안 해줬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대법원 판결의 적정성’에 대한 대화도 있었느냐는 검사 질문에는 한 변호사는 “직접적으로는 아니고, 전체적인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은 김 전 대법관이 아무런 말도 없이 판결을 선고해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게 불만이었고, 한일 외교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데 (파기환송이) 적정한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한 변호사의 검찰 조사 때 진술 내용을 제시했다. 한 변호사는 “중요한 사안 같으면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는 게 어땠느냐는 말에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감의 표시를 한 것으로 기억해 그와 같이 진술했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의 대화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본격적으로 일본 기업 측에 유리한 내용의 외교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도록 시도하던 2015년에도 이어졌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김앤장이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하면, 외교부가 이에 화답하듯 의견서를 내는 시나리오를 세웠다. 외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을 차일피일 미뤘고,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났을 때 “외교부가 소극적이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이 외교부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느냐”는 검사 질문에 한 변호사는 “교착상태에 있다는 말씀을 보고 겸해서 알려드렸고,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변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소송 일방당사자의 대리인에 불과한 한 변호사와 접촉하면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논의한 게 부적절하다고 본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공모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일본 기업 측이 원하는대로 강제징용 사건을 결론낼 수 있는 방안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검토시킨 게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신일철주금 측이 이같은 재판 개입 시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한 변호사가 업무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해 신문이 이뤄지지 못했다.

다만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2014년 11월12일자 김앤장 내부 메모에는 ‘클라이언트 반응’이라는 항목 아래 “식자층 및 매스컴의 반성 여론으로 재상고심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음”이라며 “청구권 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한국 정부(외교부)의 긍정적인 입장 표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는 법원에 대하여 준비서면, 의견서 등으로 법률적인 주장을 해왔으나 외교부 등 법원 외부로부터도 대법원을 설득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시기가 무르익었음”이라며 “그러한 간접적인 설득방안을 추진하는 것에 관하여 송무팀 탑 시니어가 상의드릴 기회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갖고 싶음”이라는 문구가 이어진다. 김앤장이 적극적으로 한국 정부기관과 사법부를 활용해 판결을 일본 기업에 유리하게 만들려고 한 정황이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1년에 2~3회 또는 3~4회 정도 만났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사로운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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