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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이틀간 협박 1400여건에 무너진 표현의 자유… 日서 사흘만에 쫓겨난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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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불편한 진실' 알리는 日 최대 국제예술전시회

정부 압력·극우 테러협박에 75일 동안 예정된 전시 중단

조선일보

일본 아이치현 국제예술제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가 4일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사진〉 전시를 중단했다. 소녀상이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전(展)·그후' 코너 전체를 폐쇄하는 방식이었다. 소녀상은 개막일(1일)부터 75일간 나고야시 아이치문화센터에서 일본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었다. 온전한 형태의 소녀상이 일본 공공미술관에 전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우익들의 거센 항의와 협박, 일본 정치권의 압력으로 3일 만에 철거되는 운명에 처했다.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아이치트리엔날레 내 '표현의 부자유전·그후' 코너를 오늘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주최 측이 설명한 폐쇄 이유는 '관람자의 안전 확보'다. 전시 시작 직후부터 테러 예고나 협박으로 간주되는 항의 전화와 메일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1~2일 이틀간 아이치현에는 1400여건에 달하는 항의 전화와 메일이 접수됐다. 2일 오전에는 "(소녀상을) 빨리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이 든 캔을 들고 행사장에 가겠다"는 팩스도 들어왔다. 항의 전화는 아이치현청 외에도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 협찬한 기업 등에도 쇄도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 아이치트리엔날레 예술감독은 "저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사례가 생기게 되어 애가 끊어지는(斷腸) 마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화가 끊이지 않는 (아이치트리엔날레) 사무국 모습을 보면서 예상보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악화되는 한·일 관계도 (항의전화가 쇄도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현의 부자유전·그후'는 외부 반발로 전시장에서 철거된 이력이 있는 작품들을 모아둔 기획전이다. 출품된 총 17개 작품들은 위안부 외에도 일본 천황제,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 등 제각각 일본 사회가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 때문에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 중단 사태가 말 그대로 '표현의 자유가 없는' 일본 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아이치트리엔날레 내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이 전시됐다는 소식은 개막 당일(1일)부터 일본 온라인을 들끓게 했다.

조선일보

3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주최 측은 일본 우익들의 항의와 협박에 소녀상이 있는 해당 코너 전체를 4일부터 폐쇄했다.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은 전시 중단 소식을 이날 1면에 보도했다(오른쪽 아래). 이곳만이 아니다. 독일 라벤스브뤼크 나치수용소 기념관에 2017년부터 전시됐던 10㎝가 안 되는 작은 ‘소녀상’도 일본 대사관의 집요한 항의로 결국 철거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른쪽 위 사진은 작은 소녀상과 같은 형태의 소녀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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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의 트위터엔 "현민의 세금을 그 따위 곳에 사용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마이니치신문의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아이치트리엔날레 기자회견 영상 아래엔 700개가 넘는 비난 댓글이 올라왔다. 마이니치신문 계정의 다른 영상에 비해 엄청난 숫자다.

보수파 정치인들도 '소녀상 때리기'에 가세했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시장은 2일 '표현의 부자유전(展)' 현장을 찾아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며 오무라 아이치현 지사에게 소녀상 전시 중단을 요청했다. 그는 "행정이 소녀상 설치를 인정하는 것은 한국 측의 위안부 관련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한국 측 위안부 관련 주장이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했다.

같은 날 오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의 정례 브리핑에서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발표라는 '빅 뉴스'를 뚫고 관련 질문이 나왔다. 스가 관방장관은 "(아이치트리엔날레에) 교부금이 결정된 과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아이치트리엔날레 측에 7800만엔(약 9억원)을 지원한 문화청이 전시 내용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자민당의 보수 그룹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도 관방 부장관에게 '보조금 지원에 신중히 대응'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제예술제에 출품된 작품 17개를 두고 집권 여당을 포함한 주류 정치권이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한 셈이다.

일본 측이 소녀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김서경·김운경 부부 작가가 2012년 도쿄도미술관 한 그룹전에 소녀상 축소판을 출품했다가,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된 바 있다. 독일 라벤스브뤼크 나치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됐던 10㎝ 남짓한 작은 소녀상에 대해서도 일본 측은 집요하게 철거를 요구해 기념관 측이 치운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치트리엔날레 측은 '표현의 부자유전·그후' 기획전 코너 폐지에 대해 정치권의 압력보다는 '안전 보장'을 이유로 내세웠다. 오무라 아이치현 지사도 "있어선 안 될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행정기관이 전시 내용에 간섭한다면 예술제는 성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무라 지사는 10년 넘게 자민당에 소속됐던 보수계 정치인이다. 그런데도 아이치현이 지원금을 빌미로 아이치트리엔날레의 전시 내용에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소녀상이 포함된 '표현의 부자유전·그후' 기획전 코너 폐지를 모두 톱뉴스로 보도했다. 아사히신문과 나고야 지역권 최대 신문사 주니치(中日)신문은 1면에 이를 보도하며 협박성 항의 때문에 3일 만에 전시가 중단된 데 우려를 표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마지막 전시일이었던 3일엔 철거 전 소녀상을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 개장 전부터 아이치문화예술센터 8층에 긴 줄이 생겼다고 한다. 개장 후엔 소란도 있었다고 한다. 우익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소녀상을 조롱하는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거나 머리에 종이 봉투를 씌우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람객 대부분은 차분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표현의 자유를 생각할 기회가 사라진 게 안타깝다"는 반응도 나왔다.

예술인들은 아이치트리엔날레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이 기획전 실행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현대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 상황을 생각하는 기획을 주최자가 스스로 탄압하는 것은 역사적인 폭거"라며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작가들 모임인 펜(P.E.N.)클럽도 가와무라 시장과 스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치적 압력 그 자체"라며 "헌법 2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한 박찬경 등 다른 한국 작가들도 항의의 뜻으로 작품을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위터 등 온라인에도 '아이치트리엔날레를 지지합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양심 있는 소수파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표현의 부자유전'의 폐지로 남은 빈 공간이 곧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는 또 다른 예술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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