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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극우세력 압력에… 일본 ‘소녀상’ 전시 사흘 만에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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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협박 빗발에 중단” 해명 불구 “표현의 자유 잃어” 日언론도 비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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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4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손에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들려있다.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의 전시 중단 결정에 따라 이날부터 전시장은 닫힌 상태다. 나고야=연합뉴스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가운데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에서 진행되던 일본 최대 국제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사흘 만에 강제로 중단됐다. 전시장에 대한 테러 협박이 원인이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지만 정부 측과 극우 세력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이번 전시를 파행으로 이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문화계는 물론 언론도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 관계자는 3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현 지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표현의 부자유, 그 후'(평화의 소녀상 전시물이 설치된 전시회의 명칭)가 3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중단됐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무라 지사는 “철거하지 않으면 휘발유 통을 들고 전시장에 가겠다”라는 테러 예고와 협박을 받았다며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시를 중단한다”고 말했다고 NHK는 전했다.

쓰다 다이스케(津田大介) 예술감독도 같은 날 기자회견을 열어 “위험에 대한 예상과 필요한 대응에 대해 지식인들로부터 들었으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나 사과한다. 내 책임이다”라고 말했다고 아사히(朝日)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쓰다 감독은 “여러 의견이 오고 있다. 내용 자체에 대한 언급은 삼가지만 감독으로서 책임을 지고 끝까지 운영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소녀상 등 전시 중단을 요구하는 외압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번 전시의 파행은 개막 당시부터 점쳐졌던 상황이다. 개막하자마자 일본 정부 인사들의 전방위적인 중단 압력과 우익 세력의 항의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관방장관이 2일 정례 회견에서 “(행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 교부 관련 사실관계를 조사해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날 전시장을 찾은 가와무라 다카시(河村 之) 나고야시 시장은 위안부 문제가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문인들의 모임인 일본 펜클럽은 전시 중단에 대해 3일 “전시는 계속돼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비판하고 나섰다. 펜클럽은 “동감이든 반발이든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사소통 공간이 없으면 예술의 의의는 사라진다”라며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본 헌법 21조 2항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로 이어질 것”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아사히신문은 4일 자 1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생각할 기회가 닫혀 버렸다”고 비판했다. 도쿄(東京) 신문 역시 같은 날 1면에 소녀상 전시 중단 소식과 일본 펜클럽의 성명 내용을 전했다.

이번 기획전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사진을 출품한 안세홍 작가는 작품의 무단 반출을 박기 위해 전시장을 지키러 들어가겠다고 4일 페이스북에 밝혔다. 트리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된 한국 작가들도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 조치에 항의해 전시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듀 뉴스(Adieu News)’를 출품한 임민욱 작가와 ‘소년병(Child Soldier)’을 낸 박찬경 작가는 담당 큐레이터와 예술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내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작품도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소녀상 지키기’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한편 일본 측이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도 소녀상 전시를 사전에 막기 위한 작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독 일본 대사관은 지난 1일 베를린 여성 예술가 전시관인 ‘게독(GEDOK)’에 공문을 보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며 한국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일본은 2017년 4월부터 독일 라벤스브뤼크 나치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전시된 소녀상에 대해 2018년 1월 철거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독일 내 한국관련 시민단체가 기증한 이 소녀상은 크기가 고작 10㎝에 불과했다. 일본은 이밖에 올해 6월 도르트문트 전시에서도 소녀상 철거를 시도했으며, 2012년 일본 도쿄도립미술관에서도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소녀상을 철거한 바 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vo.com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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