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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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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마을만이라도 우리말 지명 써야 '돌섬=독도'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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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지명연구' 완간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한자식 행정지명으로 대부분 바뀐 현실 안타까워"

연합뉴스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촬영 박상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이유로 말과 글자가 다르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기록할 때는 중국 글자를 써야만 하는 점이 가엽다고 했다.

불과 한 세기 남짓 전만 해도 땅이름은 말과 글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했다. 예컨대 마포(麻浦)는 '삼개'라고 불렀고, 노량진(鷺梁津)은 '노들나루'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동 내앞마을, 봉화 닭실마을 같은 곳을 제외하면 삼개나 노들나루 같은 우리말 지명은 대부분 사라졌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10년부터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의 우리말 지명을 정리한 책 '고지도 지명연구' 9권을 순차적으로 발간했다. 이 사업은 지리학 박사인 이기봉 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가 맡았다.

이 연구사는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우리말 땅이름에 대한 자존심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아 뿌듯하다"면서도 "우리말 지명이 대부분 없어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고지도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옛 지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러다 중앙도서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고지도 지명연구를 시작했다. 한글학회가 1960년대부터 펴낸 '한국 지명총람'과 일제가 편찬한 '조선지지자료'에서 우리말 지명을 찾아 현재 지명과 비교했다.

이 연구사는 우리말 지명이 단순히 한자를 번역한 말은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는 "지명의 한자 뜻풀이와 우리말 지명이 비슷한 사례는 30∼40%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여주에 보가 있는 '이포'(梨浦)라는 곳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배개'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곳을 '백애'(白涯)라고 썼습니다. 우리말 지명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쓴 것이죠."

이 연구사는 남양주 미음나루를 퇴계 이황이 '무임포'(無任浦)라고 쓴 예도 소개했다. 본래 미음나루는 한자로 독진(禿津)이라고 적었는데, 퇴계가 이를 몰라 우리말 지명을 듣고 임의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말 지명이 소멸한 이유를 일제강점기 지배가 아니라 높아진 학구열과 학교 교육 보급에서 찾았다.

이 연구사는 "일제강점기에 마을 이름을 통폐합하면서 새로운 지명을 많이 만들지는 않은 듯하다"며 "일본인들이 살던 곳에만 일본식 지명을 쓴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골 어르신 중에는 우리말 지명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말씀하시는 분이 적지 않다"며 "1960년대 이후 아이들이 대부분 학교에 가면서 한자식 행정지명만을 사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말 지명이 설 자리를 차츰 잃으면서 사람들은 한자 지명에 익숙해졌다. 1996년에는 평촌신도시 주민들이 항의해 인근 지하철역 이름이 우리말 지명에서 따온 벌말역에서 평촌역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이 연구사는 "그나마 최근에는 학여울, 잠실새내처럼 우리말 지명에 대한 관심이 커진 듯하다"며 "특히 도로명 중에 우리말 지명을 차용한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풍납동(風納洞)에는 바람드리길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심하고 울릉도에 있는 마을이나 섬 지명만이라도 우리말 땅이름으로 바꿔 표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컨대 저동(苧洞) 마을은 모시개라고 적자는 것이다. '돌섬'이 독도(獨島)라는 사실을 증명할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돌섬의 한자 표기가 독도라는 것을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여깁니다. 과거에는 독도를 돌섬이나 독섬이라고 부르고, 독도나 석도(石島)라고 썼습니다. 울릉도 옆에 죽도(竹島)라는 섬이 있는데, 현지 주민은 대개 '댓섬'(대섬)이라고 해요. 댓섬과 죽도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듯, 돌섬과 독도도 실체는 같습니다."

이 연구사는 "독도에 있는 동도와 서도는 예전에 '동섬', '서섬'이라고 했다"며 "학자들만이라도 옛날 자료를 인용할 때는 '독도'가 아니라 '돌섬'이라고 적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지도 지명연구' 사업이 마무리됐지만, 북한 지역에 남은 우리말 지명을 정리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북한이 외래어는 적게 쓰지만, 지명은 남한처럼 대부분 한자식으로 변한 듯하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한국 지명총람과 같은 자료를 먼저 만들어야 합니다. 강원도와 경기도는 북쪽 일부가 북한이어서 보완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말 지명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사용하다 보면 금세 자연스러워질 겁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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