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이슈 추가경정예산 편성

‘습관성 추경’의 폐단은 무엇일까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한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국회 문턱을 넘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 ‘미세먼지 추경’은 유독 지난합니다. 역대급 미세먼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던 지난 4월25일 국회로 넘어간 추경안은 그로부터 꼭 100일째인 2일, 국회 본회의에 올랐습니다. 자칫하면 역대 최장 계류기간(107일)을 넘길 뻔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부 예산·재정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는 노현웅입니다. 오늘은 추경 통과를 두고 여야는 왜 이렇게 첨예하게 다투는지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국민 경제의 주체는 크게 가계와 기업, 정부로 나뉩니다. 가계는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각자의 경제를 운용합니다. 반면 정부는 경제성장, 소득 재분배, 국민 복지 등 다양한 정책 목표를 염두에 두고 국민 경제 전체의 이익 총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살림을 꾸립니다. 이게 바로 ‘재정 정책’입니다. 작게 보면 국민의 세금을 포함한 정부 수입을 지출하는 과정일 뿐이지만, 사실 재정 정책 안에는 국가 운용의 전략과 청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재정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뇌 속에 말했듯 “권력은 이미 시장에 넘어”간 상태에서 재정은 정부가 손에 쥐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실질적 정책 수단입니다. 국회에 제출된 예산안을 둘러싸고 매번 격렬한 정치적 논쟁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추경안 처리 과정에는 아쉬운 대목이 많았습니다. 첫째, 추경안 제출 시기입니다. 이번 추경은 지난 3월6일 “필요하다면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마디에서 시작됐습니다. 애초 추경에 유보적이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중순께 입장을 바꿨고, 결국 4월25일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됩니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본예산이 집행된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1분기 직후에 추경이 제출된 사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그칩니다. 더구나 기재부는 직전 회계연도 나라 살림을 마무리해 보고하는 결산보고서를 국회에 제출(5월31일)하기도 전에 추경안부터 내밀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내리 추경안이 더 빨랐습니다. “미세먼지가 올해 갑자기 일어난 재해냐. 왜 갑작스러운 추경이냐”는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경험상 재정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은 변수가 아닌 상수인데, 이런 논란을 피하지 않은 정부의 책임이 있습니다. ‘습관성 추경’에 대한 지적도 정부가 새겨들어야 합니다. 2000년부터 20년 동안 편성된 추경은 모두 17번에 이릅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에도 3년 연속 추경이 편성됐습니다. 진보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추경 편성이 마치 정치적 이벤트처럼 반복된 셈입니다. 재정건전성을 극도로 중시하는 재정당국 관료들의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보수적인 세수 추계와 본예산 편성일 겁니다. 이렇게 ‘보수적인 세수 추계→이에 바탕을 둔 (보수적) 본예산 편성→실제 초과세수 발생→초과세수를 지출하기 위한 추경 편성’의 순환 구조가 완성됩니다. 당국으로서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 재정을 푸는 듯한 착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윈윈’ 전략인 셈입니다. 최근 3년간 초과세수는 해마다 19조~25조원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이 ‘순환 구조’의 대가입니다. 추경은 올해 안에 집행될 수 있는 사업들로만 급박하게 꾸려야 하기 때문에 본예산에서 탈락한 사업을 마구잡이로 끼워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정된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재정의 일차적 기능에 역행하는 셈입니다. 본예산이 충분히 확장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정부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거나 경기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추경이 통과된 뒤 기재부 예산실은 앞으로 한달 동안은 내년도 본예산 편성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본예산을 국회에 제출할 법정 기한이 9월3일이기 때문입니다. 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얼마나 늘어나는지 지켜봐야겠지만, 올해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9.5%)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경기 둔화로 세수 전망이 비관적인데다, 이번에 추경을 편성하면서 발행하기로 한 적자국채 3조6천억원이 그 이유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꼬리(추경)가 몸통(본예산)을 흔들어 재정이 제구실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추경의 가장 큰 폐단은 이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겨레

노현웅 경제팀 기자 goloke@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