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나훔 기자, 원다라 기자] "국가 예산을 마치 초등학생 방학숙제 하듯 몰아쳐서 심사하는게 정상인가."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 과정을 지켜본 한 야당 의원의 일갈이다.
1일 7조원 규모 추경안 처리를 놓고 밤샘 협상을 이어갔던 여야는 다음날인 2일 오전까지도 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이번 추경 협상에서 여야의 입장차가 가장 컸던 부분은 감액 규모다. 특히 적자국채 발행액이 가장 쟁점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3조6000억원에 이르는 국채 발행액을 최대 2조원 가까이 줄여 추경안에서 대폭 삭감할 것을 요구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삭감을 하더라도 6조원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가 추경안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는 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대비해 오눌 새벽 4시까지 국회에서 대기했다./윤동주 기자 doso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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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대치로 당초 1일 오후 2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오후 4시로, 또다시 오후 8시로 재차 연기됐고, 이후엔 무기한 연기돼 결국 자정을 넘기도록 열리지 못했다. 본회의 참석을 위해 대기 중인 의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새벽시간 양측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국채발행 규모는 3조60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3000억원 감축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됐다. 합의된 추경 총액은 5조8300억 원이다. 그러나 한국당이 이날 오전 다시 추가 삭감을 요구하면서 여전히 추가 삭감의 여지는 남아있는 상태다.
여야의 이러한 밤샘 대치는 입장차가 커서라기 보다는 정쟁에 따른 '늑장 심사'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추경안은 지난 4월25일 국회에 제출됐다. 이날로 계류 100일째를 맞는다. 당장 처리된다고 하더라도 역대 최장기록인 2005년 107일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을 세우게 된다.
여야가 추경안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는 2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지난 1일 본회의에 대비해 국회에서 밤을 지샜다./윤동주 기자 doso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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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거꾸로 보면 추경 심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100일이나 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7일에야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이후 여야 합의로 1일 추경 처리를 못박았고 심사 중단·재개를 거듭한 끝에 오늘에 이르렀다. '졸속 심사'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예결위원장인 김재원 한국당 의원이 협상 도중 음주를 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김 위원장은 1일 오후 11시10분께 한국당 원내대표실에서 회의를 한 뒤 평소보다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나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빚내서 추경하는 건데 우리 당에선 빚을 적게 내자,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자, 민주당에선 적어도 3조 이상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한다"라며 협상 과정을 설명했다.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가운데)이 1일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열린 예결위 간사 간담회에 참석하는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간사에게 거수 경례로 인사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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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횡설수설하거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은 음주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무슨 술이냐"며 부인했지만 코 끝을 찌르는 술 냄새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늑장 심사에 모자라 예결위원장의 음주까지, 추경을 둘러싼 여야의 '막장 행태'는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노심초사하며 밤늦게까지 추경 통과 소식을 기다리는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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