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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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지위 규정을 90일 이내에 개정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중국 등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무역을 한다는 불만에 따른 것으로 WTO가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미국이 일방적으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간 WTO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지 못하고 도리어 이용만 당해왔다고 불만을 터뜨렸던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 분쟁을 WTO 체제 개편 차원으로 확전시키면서 한국 등 여러 나라도 글로벌 무역 분쟁의 파고에 휩쓸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이 WTO 규칙을 피하고 특혜를 받기 위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면서 WTO는 망가졌다. 더는 안 된다”며 “오늘 나는 무역대표부(USTR)에 이 국가들이 미국을 희생해 WTO 시스템을 속이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WTO 개도국 지위 규정의 개혁을 지시하는 문서에서 “WTO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낡은 이분법에 계속 의존하면서 일부 회원국들이 불공정한 이득을 보고 있다”며 중국을 대표적 나라로 거론했다. 중국이 개도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각종 혜택을 보면서 미국을 희생시켰다는 주장이다. 지시문서는 중국뿐만 아니라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 10위 중 브루나이, 홍콩, 쿠웨이트, 마카오, 카타르,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7개국이 개도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 멕시코, 터키도 개도국이라 주장한다고 언급했다. 부유한 국가들이 WTO 체제에선 개도국 혜택을 누리고 있어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국가를 나열하면서 WTO 새판짜기를 요구했지만 핵심 타깃은 중국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도 트위터를 통해 "엄청난 경제 대국인 중국은 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여겨진다"면서 "따라서 중국은 굉장한 특전과 이점을 받고 있고, 특히 미국에 비해 그렇다"고 지적한 바 있다. 30~31일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 압박 성격이 강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자국 시장을 더 자유화하도록 압박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번 조치가 과거 체결된 협정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현재 어업 보조금 및 전자 상거래와 관련해 진행 중인 WTO 협상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진행중인 협상에서 중국 등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의무 수준을 이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장일치로 안건을 처리하는 WTO 특성으로 인해 WTO가 개도국 지위 규정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트럼프 정부 이전에도 이와 관련한 불만이 여러 번 제기됐으나 WTO 스스로 제도 개혁을 하기 어려워 현상 유지 상태가 지속돼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WTO 탈퇴 의사까지 내비쳤던 트럼프 대통령이 WTO를 무력화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미국은 WTO 상소기구 재판관 임명을 거부해 WTO 분쟁 조정 기능이 차질을 빚고 있다. 분쟁 조정을 위해선 최소 3명의 재판관이 필요한데, 재판관 7명 중 4명이 공석이며 올해 12월 2명이 더 퇴임하면 완전히 기능이 마비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WTO 협정과 상관 없이 부유한 나라로 지목한 국가에 대해 일방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중단하고 그간 여러 차례 언급한 상호세(reciprocal tax)도 도입하면서 미국 우선주의 무역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정부가 개도국 조항을 문제 삼으면서 중국을 넘어서 글로벌 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부유한 나라로 언급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으로부터 개도국 지위를 인정 받기 어려워 철저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미국은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현행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최소 1만2천56달러)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WTO에 개도국 체제 개선을 요구해왔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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