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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복합적인 위안부 담론의 증발 '주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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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데자키 다큐멘터리 '주전장'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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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훌륭한 나라가 되는 거죠.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예요.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정말 귀엽지 않나요?" 가세 히데야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의 말이다. 다큐멘터리 '주전장'에서 말미에 등장해 비방을 서슴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분노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 사회는 우경화된 지 오래다. 아베 정권의 망언과 도발이 멈출 줄 모른다. 거리에서 증오의 발언과 시위도 끊이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일본회의가 존재한다. '메이지헌법 복원'이라는 검디검은 속내를 품고 있다. 계획 대부분은 민주적이지도 근대적이지도 않다. 이런 집단을 설계한 이의 인터뷰가 마지막에 나오는 순간, 주전장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책임을 지고 마땅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위안부를 일본의 문제로 여겨왔다. 일본 우익 단체들의 설익은 견해 또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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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대립 구도를 그대로 펼친다. 의견이 충돌하는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나열한다. 그런데 몇몇 지점에서 갈등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인터뷰에서 "(위안부에) 스스로 갔다고 하더라도 가족을 위한 희생인 경우가 많다. 그게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걸 사람들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분(위안부 피해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만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침묵하며 지내 와야 했었던 거죠." 이어 등장하는 윤 이사장은 "그렇다고 해도 거대한 강간 제도를 만든 건 일본 정부"라고 한다. "일본 정부의 책임은 한국의 가부장적 시스템으로도, 미연합군의 책임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어붙이기 결과 그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의도적인 연출은 가세 본부장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위안부와 관련한 책을 다수 발간한 요시미 요시아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타인이 쓴 책은 안 읽어요"라고 한다. 보수파인 하타 이쿠히코에 대한 비슷한 물음에도 "그가 쓴 책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한다. 바로 미키 데자키 감독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칭 '귄위자'라고 하는 사람이 이 문제를 논하는 두 굴지의 학자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이제 놀랄 필요조차 없는 것 같다." 윤 이사장도 박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를 읽어봤느냐는 질문에 가세 본부장과 비슷한 답을 한다. "중반 즈음 읽다가 구토증이 나서 접었어요. 아, 이건 읽을 필요가 없겠구나. 역사책도 아니고, 법적인 진실의 규명을 담은 책도 아니고. 인류학자가 쓴 거처럼 사람에 대해서 쓴 것도 아니더라고요. 마치 논픽션? 소설 같은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더 이상 읽을 수 없었어요." 미키 감독은 이 발언에 어떤 부연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 교수의 인터뷰를 뒤에 배치해 후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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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용이 편협한 사고에 기대어 있지는 않다. 미키 감독은 중반까지 일본 우익 인사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하며, 나름 설득력도 갖춘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얼마나 헛되고 황당한 생각에 사로잡혀있는지를 그리는데 무게를 둔다. 특히 그들이 가진 우월감을 우스꽝스럽게 비추는데 적잖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사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복합적인 담론은 증발하고 만다. 같은 소재를 다룬 여느 다큐멘터리들과 비슷한 결론을 내리는데 머문다. 일본 정치인들이 이런 사태를 키우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지만, 자칫 감정적인 대응을 촉발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면죄부로 기능할 수도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40여년이 지나서야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유가 오직 일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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