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 사회2팀 기자 |
지난 6일 새벽, 경기 안산시 상록수역 광장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주위에 4명의 남성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소녀상을 향해 침을 뱉고 엉덩이를 내밀며 조롱한 뒤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모두 20~30대의 한국인이었다. 이들 중 3명은 사과를 기다리겠다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위안부 피해자를 보호하는 나눔의집 측은 고소장을 냈다. 경찰은 지난 22일 이들을 모욕 혐의로 처벌해달라며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이들이 실제로 처벌을 받을지는 불분명하다. 모욕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돼야 하는 현행 모욕죄 성립 요건 때문이다. 아직까지 동상을 모욕의 대상으로 인정한 판례는 없다. 침을 뱉은 정도로는 동상에 심각한 훼손을 입혔다고 보기 어려워 재물손괴죄 적용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소녀상을 둘러싼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는 한 중학생이 소녀상을 돌로 내려치는 일이 있었다. 지난 1월에는 대구 2·28 공원에 설치된 소녀상에 50대 남성이 매직으로 낙서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자를 폄하하고 명예를 실추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달라 했는데…그것도 이슈가 지나가면 없는 일이 되더군요.” 나눔의집 안신권 소장은 한숨을 쉬었다. 국회에선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왔지만 ‘표현의 자유’ 문제와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안산 소녀상 사건에 연루된 청년들이 국민들의 반(反) 일본 정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그 화풀이를 엉뚱한 곳에 한다는 것이다.
“내 얼굴에 왜 침을 뱉습니까, 그것(소녀상)도 사람인데….” 사건 나흘 뒤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2) 할머니는 가해 청년들을 향해 한 맺힌 호소를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제품을 불태우거나 일본인을 혐오해야 한다고 부추긴 적이 없다.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받고자 할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역사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위안부를 한·일 정부 간 정치 문제로 보는 건 잘못된 인식입니다. 전쟁 중 약자에 대한 인권 침해이자 국가의 개인에 대한 폭력 아닙니까.” 초창기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정의기억연대(구 정대협) 관계자의 말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얼굴’이 조롱당한 채 방치되고 있는 건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박사라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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