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일째 표류…대형 현안 속출하는데도 ‘정치 공방’만 계속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촉발한 한·일 무역갈등과 경기 하강 국면 대응 등을 위해 추경안 집행이 시급하지만 여야 극한 대치로 심사조차 ‘올스톱’ 된 상황이다. 국회 계류 기간만 놓고 보면 2000년(107일)에 이어 두 번째 최장 기록이지만, 이번에는 헌정 사상 최초로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부가 지난 4월25일 제출한 추경안은 미국산 쇠고기 파동·촛불집회 등으로 개원이 늦어져 ‘91일’ 만에 지각 처리됐던 2008년 당시와 동률을 이뤘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의약분업·한나라당 장외투쟁 등으로 107일간 계류된 2000년 추경안 처리 기록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여야는 이날도 공방만 벌였다. 대야 협상과 압박을 병행해 온 여당은 ‘장기전’ 태세로 전환했다. 최근까지 자유한국당을 향해 “추경 처리에 협조하라”고 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추경 관련 언급을 삼갔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도 “(협상해도) 원칙을 지키겠다”며 북한 목선 국정조사·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 등과 ‘거래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중진연석회의 석상에서 대여 비판 목소리는 냈지만 추경은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가 “대통령은 협치를 말했는데, 조건 없는 처리만을 얘기하는 이인영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잘 안 맞는 것 같다”면서 “추경과 법안 처리는 대통령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러시아 군용기 영공 침범 등 초유의 현안들이 터져 나오는 상황인데도 여야가 추경안을 정치적 볼모로 가둬두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난해까지 국회에 제출된 정부 추경안은 모두(90차례) 처리됐다. 추경안은 전시인 한국전쟁 중(1950~1953년)에도 9차례나 국회를 통과해 집행됐다. 하지만 이번의 전례 없는 ‘추경안 불발’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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