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검찰국장 직권남용 재판
“승승장구 경력에 걸림돌 될까봐”
법원이 본 서지현 검사 전보 이유
변호인 “상상과 추리가 이겨 … 상고”
대법원 최종 판단에 법조계 관심
재판부는 서 검사를 성추행하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안태근(왼쪽사진) 전 검사장에게 검찰의 구형과 같은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 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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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에 대한 성추행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경우 검사로서 승승장구한 경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안태근(53) 전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의 2심 재판부가 밝힌 그의 범행 동기입니다.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 1-1부(부장판사 이성복)는 안 전 검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사직을 유도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가 인정된 것입니다.
안 전 검사장은 재판부 표현대로 ‘검사로서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그는 1987년 서울대 법대 3학년 시절 일찌감치 사법시험에 합격합니다. 안 전 검사장과 영동고를 함께 다닌 동기 법조인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안태근 때문에 전교 2등까지만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안 전 검사장은 ‘엘리트검사’ 코스를 밟았습니다. 법무부 검찰국 검사,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검찰국장 등 검찰 내 핵심 요직을 모두 거친 손꼽히는 ‘기획통’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2심 재판부가 징역 2년을 선고한 근거는 뭘까요.
안 전 검사장에게 인정된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쉽게 말해 검찰국장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부당하게 행사해 하급자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검찰국장은 검사 인사를 총괄합니다.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서 검사가 정기인사 때 통영지청으로 전보된 데 대해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의 권한이 부당하게 개입된 결과라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에 등장하는 서 검사의 인사는 2015년 8월입니다. 그러나 5년 전인 2010년 10월 30일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안 전 검사장은 조문을 가 장례식장에서 검사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그때 만취한 안 전 검사장 옆에 서 검사가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해 1월 서 검사가 안 전 검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 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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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성추행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안 전 검사장의 재판에서는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2015년에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전보할 만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느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안 전 검사장측은 1·2심에서 “장례식장에서는 만취해 추행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추행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해 서 검사에게 부당한 인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성추행 소문이 검찰 안팎에 상당히 알려져 몰랐을 리 없다며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이 문상 당시 상당히 취해 있었음은 인정된다”면서도 “적어도 법무부 감찰관실에서 진상조사에 나선 2010년 12월에는 강제추행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라 판단한다”고 밝혔습니다. “2010년 정식 감찰은 아니었지만 안 전 검사장에게 술 먹고 사고 치지 말라는 주의를 준 것 같다”는 감찰담당관의 진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이 성추행 문제를 덮기 위해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줘 간접적으로 사직을 강요했다고 봤습니다. 안 전 검사장이 서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1·2심 재판에서 ‘지시가 있었나’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이유입니다. 2심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의 지시 없이 검찰국의 검사가 독자적으로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 배치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1·2심 재판부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서 검사의 인사안은 검사 인사 한달여 전인 7월부터 여러 차례 변경됩니다. 서 검사의 통영지청 배치는 검토되지 않다가 검찰인사위원회 개최 이후 작성됐습니다.
또 인사담당 검사는 최종 인사안 변경 전까지 통영지청 배치가 예정됐던 최모 검사에겐 전화로 의사를 타진했지만 서 검사에게는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자연스럽지 않은 업무처리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인사담당 검사는 2심에 증인으로 나와 “검찰인사위 이후 인사 최종안만을 안 전 검사장에게 보고했고 그 이전에는 보고한 기억이 없다”며 “안 전 검사장으로부터 수정 지시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지만 재판부는 믿지 않았습니다. 상급자인 안 전 검사장의 지시 없이 이례적인 인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법조계는 이 사건의 최종 결론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결정적 증거가 없는 직권남용 사건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정황 증거만으로도 유죄가 나오면 앞으로 검찰은 누구든 기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검사는 마음만 먹으면 햄과 샌드위치도 기소할 수 있다’는 미국 법조계의 유명한 말까지 생각났다고 합니다.
안 전 검사장측은 2심 선고 당일 상고했습니다. 안 전 검사장의 변호인은 “상상과 추리가 증거를 이길 수는 없다는 형사재판의 근본 원칙이 무너졌다”고 토로했습니다. 정황 근거가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지난 17일 이른바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2009년 보육교사 살인 사건의 피고인 박모(50)씨에게 제주지방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박씨가 사건 당일 행적에 관해 일관성 없는 진술을 하고 있지만 실종 당시 피해자가 다른 차량이나 택시에 탑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검사’의 직권남용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습니다. 대법원은 ‘합리적 의심’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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