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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설왕설래] 패자의 한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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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졌지만 이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한국 여자 수구경기에서 실제 일어났다. 그제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러시아와의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첫 골이 터지자 한국 선수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전광판의 스코어는 1-30으로 한국의 대패였다. 한국은 앞서 헝가리와의 1차전에서도 0-64로 완패했다. 하지만 그날 패자의 환호는 승자보다 컸다.

한국 여자팀 선수들은 창단 한 달여밖에 안 된 초짜였다. 한국은 대회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따냈으나 선수가 없었다. 부랴부랴 중고생 경영(競泳)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었다. 그러기에 애초 그들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었다. 소박한 ‘한 골’이었다. 드디어 그 꿈을 이루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 것이다.

두 경기에서 94골을 먹은 패자에게 관중들까지 박수를 보낸 것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1차전의 대패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내일은 더 잘해보자”며 서로 격려했다. 이런 불굴의 정신이 있다면 첫 골은 곧 두 번째 골로 이어질 것이고, 언젠가 승자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다.

달 착륙 50돌을 맞아 그제 공개된 아폴로 11호의 메시지 역시 희망이었다. 1969년 발사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만약의 귀환 실패에 대비해 별도의 연설문을 준비했다. 연설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용감한 남성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구조의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 속에서 인류를 위한 희망이 움트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실패의 잿더미에서조차 희망의 씨앗을 찾으려 했던 열정이 놀랍다.

인간이 찬란한 문명을 이룬 것은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은 발명왕 에디슨일 것이다. 그는 전구 발명 과정에서만 2399번을 실패했다. 주위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2000번의 단계를 거쳐서 전구를 발명했을 뿐입니다.” 당신은 2399번의 실패를 보는 사람인가, 1번의 성공을 보는 사람인가. 잃은 94골에 땅을 치는 쪽인가, 얻은 1골에 희망을 거는 쪽인가.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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