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0 (목)

[세상읽기] 북한 헌법과 경제개혁 / 김광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북한 주민 대부분은 북한 헌법을 알지 못한다. 남한에서도 북한에 헌법이 있는가 반문할 사람이 많다. 북한에도 헌법이 존재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개정되고 있다. 북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든 뒤 수차례 개정했다. 중요한 개정은 1972년, 1992년, 1998년, 2009년, 2012년, 2016년 개정이다. 1972년은 북한을 “자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라고 국가의 성격을 명문화했다. 1992년은 국방위원회를 신설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신에 주체사상을 강조했다. 1998년은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마무리하면서 국방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김일성 헌법’을 명문화했다. 2009년은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통치이데올로기로 승격시켰고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신설했다. 2012년은 김정은으로 권력승계를 위해 김정일의 업적을 강조하고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신설했다. 2016년은 당 중심의 운영을 위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폐지하고 국무위원장을 신설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19년 헌법이 최근 개정됐다.

2019년 헌법 개정을 통해 북한은 선군사상을 삭제하고 국무위원장을 국가의 대표로 명시했다. 통상적인 국가의 운용체계와 유사하다. 그러나 국무위원장 명령을 헌법보다는 다음이지만 최고인민회의 법령보다 우선 적용하도록 개정했다. 헌법과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이 대통령과 행정부를 구속하는 법치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는 당과 법률의 관계 문제다. 중국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중국은 정부가 법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부가 법률을 벗어나서 공산당의 방침에 따라 일정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국무위원장 명령을 법령보다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한 이번 헌법 개정은 당과 법률의 관계에서 당의 우위성을 명확히 한 규정이다.

북한의 2019년 개정 헌법은 기존 헌법에 명시돼 있던 대안의 사업체계 등을 삭제했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김일성 시대 북한 특유의 경제관리 방식이다. 대신에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명시했다. 북한은 2014년 소위 ‘5·30 조처’라는 경제개혁 조치를 시행했다. 이어 경제개혁조치를 법적으로도 뒷받침했다. 2010년 제정된 북한의 기업소법은 독립채산제를 실시했지만 기업의 독자적 경영권은 제한적이었다. ‘5·30 조처’ 이후인 2014년 11월 개정된 기업소법은 생산조직권, 노력조절권, 품질관리권, 무역·합영합작권, 재정관리권, 가격제정권·판매권 등을 기업이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북한 전역의 모든 공장과 기업, 상점 등에 자율경영권을 부여한 것이다. 이번 헌법 개정은 경제개혁조치를 법률을 넘어 헌법적으로 뒷받침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혁은 시작에 불과하고 법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 많다. 자율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에 국가는 일정한 국가납부금을 징수해야 국가재정을 충당할 수 있다. 일종의 법인세다. 이를 위해서는 회계법과 회계검증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회계감사와 유사한 회계검증을 위해 북한은 회계검증법을 제정하고 중앙과 도·직할시뿐만 아니라 시·군에도 회계검증기관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험에 비추어 보면 회계 투명성의 획기적인 개선은 단기간에 쉽지 않다. 인력 훈련과 감시체계 정비 등이 필요하다. 또한 독립채산제에 따라 계약 위반과 이를 둘러싼 분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독립된 재판기관의 운영은 불가피하다. 증거조사 절차와 같은 절차 정비와 사법인력의 훈련이 필요하다.

경제개혁을 위한 법제 정비는 북한이 스스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필요한 범위에서 우리는 지원과 협력을 할 수 있다.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북한 법제도에 대한 남한 전문가의 비평과 연구가 북한에 전달된다면 간접적인 교류가 될 것이다. 개성공단 등 북한 특구에서 외부 투자가의 투자 유치를 위한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 정비를 촉구할 수 있다. 북한 특구에서의 법제도 정비와 운영 경험은 북한 내부로 확산될 수 있다. 회계와 세무 등 법제도 운영을 위한 북한 인력의 훈련을 우리가 지원할 수도 있다. 북한 법제 지원은 미국 대북제재 규칙에서도 “북한 민주주의 건설지원활동”(법치, 시민참여, 정부책임성과 회계, 보편적 인권과 기본적 자유, 정보접근, 시민사회발전사업 포함)에 의해 대북제재 예외로 인정된다. 북한의 경제개혁을 위한 법제도의 정비는 평화 정착 과정에 도움을 줄 것이다.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 [▶[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