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무총리의 순방외교를 ‘투톱 외교’라는 적극적인 관점으로 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해외 순방을 둘러싸고 일각의 비판에 직면한 이낙연 국무총리에 대한 엄호 성격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수출규제 사태를 외교적으로 풀기 위한 카드로 이 총리를 활용하기 위한 포석 차원에서 투톱 외교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상조 정책실장(오른쪽)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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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상외교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통령 혼자서는 다 감당하기가 어려워졌다”며 “그래서 대통령과 총리가 적절히 역할을 분담해 정상급 외교무대에서 함께 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모두발언 전체를 총리의 정상급 외교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특히 “대부분 나라는 정상 외교를 투톱 체제로 분담한다”며 “의원내각제 국가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정부를 총괄하는 총리가, 입헌군주제 국가는 국왕·총리가, 사회주의 국가도 국가주석ㆍ총리가 정상 외교를 나누고 있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지만 독특하게 총리를 두고 있고 헌법상 총리에게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의 총리도 정상급 외교를 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사태라는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총리 순방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자 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타지키스탄을 공식 방문한 이낙연 국무총리가 16일(현지시간) 수도인 두샨베 소모니 동상을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소모니 동상은 타지키스탄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기를 이룬 소모니 왕조(819~909)의 왕 이스마일 소모니를 기리기 위해 건립됐다. 두샨베(타지키스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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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는 앞서 13일 방글라데시ㆍ타지키스탄ㆍ키르기스스탄ㆍ카타르 등 4개국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8박 10일 일정으로 순방길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10일부터 7일 일정으로 에티오피아·가나·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순방에 나선 상황이다. 이를 두고 야권을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외교적 비상상황에서 내각을 총괄해야 할 총리와 외교장관이 자리를 비워도 되느냐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특히 이 총리의 해외 순방 기간은 정부가 강력하게 요청한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예결위 심사 기간과도 겹친다. 이 총리는 출국 전인 11일 국회 예결위에 출석해 “공교롭게도 (순방과 예결위 심사) 시기가 일치돼 몹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양해를 구한 바 있다. 총리실은 이와 관련해 “총리는 해외 순방 중에도 현안에 대해 계속 보고 받고 적절한 대처를 지시할 계획”이라며 현안에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나레디 판도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교부) 장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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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대일 문제와 관련해 이 총리에게 모종의 역할이 주어질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 해결을 위해 고위급 특사 파견 필요성이 거듭 제기되는 상황인 만큼 사태 전개 추이에 따라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대표적 ‘일본통’으로 통하는 이 총리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총리는 기자 시절 도쿄 특파원을 지냈고, 국회의원 때도 한일 의원연맹 회원으로 적극 활동해 왔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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