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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건축가 이종호, ‘건축의 역할’ 끊임없이 고민…질문 이어받아 현실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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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종호 추모전

아르코미술관 ‘리얼-리얼시티’

“현실·건축의 거리 좁히는 노력…살아있었다면 했을 법한 전시”

영상·사진·그림 등 17개팀 참가

경향신문

강원 평창에 있는 ‘감자꽃 스튜디오’는 폐교를 재활용한 문화공간이다. 1999년 폐교된 평창의 산촌 폐교(옛 노산분교)가 이종호의 설계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위 사진). 정재호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리얼-리얼시티’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세운 4구역’을 설명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4구역’은 현재가 밀어내고 있는 과거의 흔적을 의미한다(아래). 아르코미술관 제공·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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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1957~2014)는 ‘건축의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한 건축가였다. 2014년 갑작스레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또 동료들에게 던졌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리얼-리얼시티(REAL-Real City)’전은 건축가 이종호를 추모하는 전시다. 그러나 이종호의 작품을 단순히 되돌아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건축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17개팀이 모여 이종호가 남긴 질문을 현재의 맥락으로 이어받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심소미 독립큐레이터는 “추모는 하되, 단순히 작가의 서사만을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종호와 25년간 함께 작업했던 건축가 우의정(건축사사무소 METAA 대표)은 “이종호의 전시가 아니라, 이종호가 (살아 있다면) 했을 법한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종호는 1980년 대학을 졸업하고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연구소’에 들어갔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맡아 김수근의 마지막 제자로 꼽혔다. 1989년 독립해 문화집단 스튜디오 메타(METAA)를 설립했으며 여러 건축가들과 서울건축학교(SA)를 운영했다. 2005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를 지냈다. 바른손센터, 박수근미술관, 노근리평화기념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등을 설계했으며 광주·순천의 문화도시 연구,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등 도시 공공성 연구를 진행했다.

이종호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순수 국내파’ 건축가였다. 대신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경험을 쌓았다. 건축의 한계 또는 건축과 일상의 경계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심소미 큐레이터는 “이종호는 도시 내부를 파고들며 건축의 도시적 역할을 고민했다”며 “건축가, 학생, 예술가, 인문학자, 기획자까지 다양한 이들과 도시를 탐구하며 현실과 건축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가고자 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건축가 이종호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술관 1층은 ‘이종호 아카이브룸’이다. 그가 쓰던 노트북 컴퓨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동료들의 소장자료, 메타 건축사사무소, 국립현대미술관 아카이브 등에 남아 있는 여러 자료들 중에서 선별했다.

‘감자꽃 스튜디오’는 폐교를 재활용한 문화공간이다. 1938년 문을 열었다가 1999년 폐교된 강원 평창의 산촌 폐교(옛 노산분교)가 이종호의 설계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를 보여준다. 이종호가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해 외관에 사용한 폴리카보네이트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1층 전시작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남겨진 언어’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의 작품이다. ‘일상의 실천’은 전시 제목인 ‘REAL-Real City’의 알파벳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며 이미지와 언어의 경계를 실험했다. 언어가 해체되면서 발생한 틈새에는 이종호의 어록을 넣었는데 하나하나 읽어볼 만하다. 이종호는 “건축가는 시대가 요청하는 바에 따라서 변화하여야 한다” “건축가는 일종의 바이러스입니다. 체제 안쪽에 존재하면서 경계를 건드리는, 그래서 체제를 깨어 있게 만드는 바이러스 같은 거죠”라는 말을 남겼다.

건축가 김광수의 ‘여기에서 여기를’은 미술관 내부에 있지만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공간을 조명한다. 바로 아르코미술관 천장의 철골 트러스(truss)다. 철골 트러스 안쪽에 조명을 설치했고, 그 안을 촬영해 영상작품으로 만들었다. 심소미 큐레이터는 “1979년부터 미술관에 있었지만 어둠의 영역에 그쳤던 천장의 리얼리티를 탐색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후보에 올랐던 화가 정재호는 ‘세운상가 4구역’을 40일간 그려 전시했다. 이곳은 정재호가 지난해에도 그렸던 곳이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4구역’은 현재가 밀어내고 있는 과거의 흔적을 의미한다.

영화감독 김무영이 서울의 오래된 동네들을 느린 시간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동네 안 풍경’, 건축사진가 김재경의 사진 연작 ‘잠실시영아파트’, 건축과 비건축의 경계를 묻는 건축가 정이삭의 ‘비설계, 설계’ 등의 작품도 시선을 잡아끈다.

전시와 함께 메타 건축사사무소는 미술관 입구에 높이 4.5m짜리 뼈대만 있는 구조물을 세웠다. ‘마로니에 파빌리온’이란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미술관과 공원의 경계에 자리 잡았다. 메타 건축사사무소 이상진 부소장은 “아르코미술관과 마로니에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전시를 알리면서 그 경계를 흐리게 하기 위한 설치물”이라고 설명했다. 마로니에공원은 이종호가 우의정과 함께 설계한 ‘유작’이기도 하다. 관람료는 무료, 전시는 8월25일까지 이어진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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