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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일본의 수출규제가 ‘복지 한국’ 향한 변화의 계기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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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출간한 윤홍식 인하대 교수

경향신문

지난 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한국이 걸어갈 복지국가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해서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가능성의 한계’에서 최대치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한계지점의 틀 자체가 확장되는 ‘이중의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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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출규제로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런 구조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 ‘총체적 변화’를 고민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겁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복지국가로 가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52)의 말을 더 들어봤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사회보험을 주축으로 삼는 한국 복지체제가 정규직, 중산층 노동자를 중심으로 제도화한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중소기업 소재산업이 활성화되고 대기업 수출과 국내 산업의 연결관계가 높았다면, 사회보험제도도 보편적으로 확대됐을 겁니다.”

‘경제·정치·복지’ 3개 축으로 삼아

200여년간 한국 사회 면밀히 조망


지난 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윤 교수는 인터뷰 내내 산업구조(경제)와 권력관계(정치) 그리고 복지체제가 “하나의 벡터”라고 강조했다.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것도 움직인다. 최근 출간한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경제·정치·복지를 3개의 축으로 삼아 18세기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200여년을 조망했다. 서구의 이론을 대입하거나, 복지정책 위주로 이뤄진 연구에서 한국 복지체제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살핀 드문 저작이다. “한국 사회과학계에 기념비적 책(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 “학계에 ‘벼락처럼 내린 축복’(문진영 서강대 교수)”이란 찬사도 나왔다.

경향신문

책은 ‘부끄러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 2012년 총·대선의 복지국가 논쟁이 벌어질 당시 윤 교수는 복지국가 필요성을 말하는 대중강연에 자주 나섰다. 스웨덴과 독일, 영국 사례를 말하다가 문득 부끄럽고 민망해졌다. “서구는 자본주의와 정치체제가 어떻게 변해왔고, 그것이 복지와 어떻게 연관됐는지 16세기까지 거슬러 오르면서 정작 한국에 대해선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더군요. 향약, 계, 두레를 언급하는 수준이죠. 그 부끄러움이 이 책을 쓰게 했습니다.” 한국 현실에 근거한 대안을 마련하려면 그 기원과 궤적을 분석한 기초자료, ‘징검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300쪽짜리 책을 쓰려던 계획은 7년에 걸쳐 1800쪽을 쓰는 방대한 작업이 됐다. ‘역사적 복지국가’라는 개념부터 내놨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공간적으로는 서구 특히 서유럽에서 나타난 역사적으로 특수한 분배체계를 뜻하는 말이다. 세계체제의 ‘반(半) 주변부’인 한국이, 21세기에 추구하는 복지국가가 이 ‘역사적 복지국가’일 수는 없다고 했다. 기원부터 파고드는 통시성과 ‘일국적 관점’을 떠난 총체성을 갖춘 분석을 해야 했다. 이에 따라 18세기부터 1945년까지 자본주의 이행기, 1945년부터 1980년까지 반공개발국가 복지체제의 형성, 1980년부터 2016년까지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로 나눠 3권에 걸쳐 정리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한 시기가 있다. 그가 ‘대역전’으로 표현한 미군정, 그리고 1990년 3당합당이다. “해방 직후 민중의 지지를 받던 좌파가 미군정 3년 만에 궤멸적 타격을 받고, 오로지 우파가 지배하는 체제가 됐습니다. 그런 ‘대역전’ 없이, 한반도가 통일된 상태로 해방을 맞았다면 어땠을까요. 한국이 복지국가나 사회의 결실을 보다 더 공정하게 나누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게 한 가장 중요한 결절점입니다.”

박정희 시대는 개발국가 복지체제로 규정했다. 노동통제와 장시간 노동의 결과로 쥐어진 급여로 부동산 등 사적 자산을 축적해 각자가 사회위험에 ‘알아서’ 대비하는 체제다.

이후 1987년 민주항쟁으로 노동자와 진보 세력이 다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다만 이는 산업구조와 정치질서, 분배체계의 진정한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윤 교수는 그 길을 막은 것이 1990년 3당합당이라고 본다.

“당시 한국에 ‘3저호황(저달러·저유가·저금리)’과 함께 생산과 소비가 선순환하는 체제가 구축됩니다. 서구 복지국가 황금기와 유사한 형태죠. 하지만 3당합당을 계기로 권위주의로 복귀하면서 변화 가능성은 차단되고, 대기업 주도의 수출중심 경제 체제가 공고화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박근혜 정부 복지체제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파악한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다. 복지제도를 상당수 계승했지만, 보수정부에선 실제로는 일정 정도까지 복지확대를 용인하되 제약 장치를 둬 ‘개발국가 복지체제’로 복귀하는 특성이 나타났다고 짚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선 “복지정책이 경제 변화와 무관한 게 아니라 통합적으로 흘러간다는 기본적 시각에서 비전을 마련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그것이 실천적 정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여전히 부재해 아쉽다”고 했다.

“양적인 차원에서만 확대된 복지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가 아니다

산업구조·복지제도 변화와 함께

정치적 개혁 주체 형성돼야 가능”


그는 아직 한국은 “복지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단지 ‘양’적인 차원에서 복지가 확대됐다고 복지국가가 되진 않습니다. 시민들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이 나아갈 복지국가의 상은 아직 합의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뚜렷하다고 그는 말한다. “미시적 변화, 개별 제도의 변화로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광장을 채웠던 촛불도 그런 목소리였다고 봅니다. 어렵지만 남은 길은 총체적 변화를 이뤄내는 것뿐입니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그에 기반한 복지제도의 변화, 이를 가능케 하고 개혁을 지속시킬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윤 교수는 “학자로서 기능하는 동안”, “글을 읽지 못할 때까지” 이 저작을 고치고 다듬겠다고 했다. 북한의 분배체계를 정리한 것까지 포함할 생각이다. “많은 비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학, 정치학을 전공하신 분들과 논쟁을 통해 보완되길 바랍니다. 정치·경제·복지는 통합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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