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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기승전결을 분명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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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박사의 톡팁스-11]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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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정하고 말을 시작하라.

이어령 박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달변가이다. 말을 능숙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만사에 막힘이 없다. 이어령 박사만큼 말을 잘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정말 흔치 않다.

이어령 박사는 듣는 사람이 솔깃하게 이야기를 한다.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된 동영상 '늙어서 깨달으면 큰일 나!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동영상에는 달변가 이어령 박사의 말솜씨가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동영상은 편집의 묘미를 극대화한 현대적 감각의 프로그램이다. 질문은 투박한 타자소리와 함께 문자로 화면에 찍힌다. 그리고 궁금한 내용들이 질문으로 던져진다.

"사실 나는 지금 투병 중입니다. 고통스럽고 절망스럽습니다만, 죽음은 피할 수가 없는 거죠. 젊은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어요."

3분 18초짜리 동영상은 25초간의 짧은 인사로 시작된다. 이어령 박사는 시청자들에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프며, 결국은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듣는 젊은이들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인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인사가 아니라, 청취자를 붙드는 고리인 셈이다.

화면에 찍힌 첫 번째 찍힌 질문은 "한번 뿐인 내 인생 어떻게 살고 있나요?"였다.

이어령 박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최선을 다해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답변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당신 직업이 열두 개나 되더라. 교수, 장관, 행정직에, 언론인에, 안 해 본 것이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데 사실상 내 인생은 굉장히 좁게 산 셈이에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고, 읽고, 사색하는 이런 것만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길이 나한테는 없었어요. 참 후회스럽습니다. 많은 꿈들이 있었으면, 지금 내게 다른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그런 꿈을 내가 갖지 못하고, 글 쓰는 것만 하겠다, 위대한 작가가 되어야 되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정말 값어치 있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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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점층적으로 풀어나가라.

이어령 박사는 평이하게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을 할 때, 항상 청중이 마음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어령 박사의 말에는 갑작스러운 비약이나, 돌연한 생략이 없다. 들어가고 나가는 말이 분명하면서도, 끊고 맺음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달변가의 능숙함이다.

2013년 2월 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세종학당은 전 세계 네티즌을 상대로 '제1차 한국어·한국문화 명사특강'을 공개했다. 강사는 이어령 박사였고, 주제는 '한국 말 속에 담긴 창조의 힘'이었다. 이 강의에서도, 이어령 박사는 탁월한 말솜씨를 선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어령입니다. 많은 강의를 해봤지만, 오늘같이 정말 뜻깊은 강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구별 없이 전 세계에, 우리말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많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요즘 제가 80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80초, 80 20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금년에 제가 여든 살입니다. 만 80이 됐어요. 그러기 때문에 80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요즘 제가 80 평생 누구와 살아왔나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제일 가까운 부인도 80년을 함께 못 살았습니다. 부모님도 함께 못 살았습니다. 먼저 돌아가시거나, 헤어져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나, 부인도 80년을 함께 못 사는데, 국어와는 함께 80년을 살아온 거죠. 그러기 때문에, 가장 친한 벗이고, 태어나자마자 옹알이 할 때부터 익히며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한국말이 뭐냐?' 딱딱하게 말하지 않고, 우리 생활 속에서 함께 생각하고 누리고 있는 한국말이 오늘 전 세계에 퍼지고,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각에 우리 한국말에 대해서 되짚어보자 하는 생각에, 여러분과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어령 박사의 말은 쉽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어령 박사는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기승전결의 틀을 가지고, 늘 하나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말은 단문으로, 결론은 명확히.

이어령 박사의 말은 대부분 단문이다. 필요 이상의 수식이나, 서술이 없다. 주어 하나에, 술어 하나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소위 '단문' 형태이다.

단문으로 말하겠다고 누구나 곧바로 단문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글쓰기처럼, 단문으로 말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문 말하기는 단문 글쓰기와 마찬가지이다.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한 습관이다. 단문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어령 박사가 말하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어령 박사는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야기의 골격만 서술한다는 뜻이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허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구조이다. 쓸데없는 수식 대신, 내용 전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골격만 단문으로 서술하는 이어령 박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경쾌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거창한 주제를 풀어나갈 때에도 그렇고, 사소한 일상에 깊은 통찰을 담아 설명할 때도 그렇다. 이어령 박사는 날렵한 문장으로 가볍게 말한다.

'창조하는 법 아이를 가르치는 법'이라는 동영상에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어령 교수의 말솜씨가 나타난다. 이어령 교수는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한다. 거의 단문이다.

"창조는 관심에서 생기고, 관심은 의문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학문(學問)이라는 말을 쓸 때, 물을 문(問) 자를 쓰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대학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있는데, 질문을 하는 물음이 없어요. 주역에서는 학문을 배운 것을 묻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문자를 쓰는 것입니다. 이 물음이 창조의 알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령 박사는 문장이 계속 이어지게 말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게 만든다. 기승전결의 틀이 있는 것이다.

"기승전결을 분명히 하라. 기승전결 없으면, 논리도 없다. 그러면 이해도, 감동도 없다."

[이성민 미래전략가·영문학/일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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