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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우지경의 여행 한 잔] `스위스 속 이태리`…루가노에서 마시는 비앙코의 상쾌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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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기분이었다. 루가노 행 기차 안내 방송 덕이다. 취리히에서 탑승할 땐 분명 독일어였는데, 종착역에 다다르자 이탈리아어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루가노 기차역을 나서자 머리 위로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졌다. 취리히와는 온도가 달랐다. '본 조르노!' 기차역 맞은편 레스토랑 점원도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건넸다. 통유리 창 너머로는 산 로렌초 대성당과 주황색 지붕을 얹은 집들이 촘촘히 늘어선 호숫가 풍경이 펼쳐졌다. 이탈리아와 접경을 이루는 루가노 호수였다.

야자수가 늘어선 루가노 호숫가엔 스위스에서 제일 유명한 프레스코화를 품은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도 있고, 베네치아 산마르코를 닮은 광장도 있다. 꼬르륵. 아름다운 전망 앞에서도 배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솔직한 소리에 놀라 메뉴를 펼쳤다. 이 도시는 오래전 이탈리아 땅이었노라 증명이라도 하듯이. 19세기 후반 루가노가 속한 티치노 주가 스위스 연합에 합류해 스위스가 됐지만, 이곳 주민은 대부분 이탈리아계다. 이래서 루가노는 '스위스 속 이탈리아'라고 불린다.

"루가노에선 메를로 비앙코를 마셔야죠!" 점원에게 와인 추천을 부탁하자, 1초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소량 생산하다 보니 대부분 스위스에서 소비되고, 2%만 수출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스위스가 아니면 마셔보기 힘든 메를로 비앙코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과연 호숫가를 바라보며 마시는 메를로 비앙코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이 한 잔을 위해 우리는 루가노 행 기차에 오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그토록 뛰었던 걸까. 일행과 잔을 부딪치며 어느새 추억이 된 몇 시간 전 얘기를 나누다 문득 루가노 근처 몬타뇰라에서 여생을 보낸 헤르만 헤세가 남긴 글귀가 떠올랐다.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인생에 대해 잡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이다." 어쩌면, 헤르만 헤세도 메를로 비앙코를 홀짝이며 저 문장을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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