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국 장쑤성의 롄윈강시에 있는 공장에서 직원들이 휴대전화용 카메라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자 각국의 정보기술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시설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롄윈강 |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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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델 등 글로벌 기업 생산라인 이전 가속…대만은 절반 이탈 전망도
중 “미국의 보복 탓” 주장하지만 고임금·보안 문제 등 요인 다양
노트북 컴퓨터는 세계에서 연간 1억6000만개가 유통된다. 스마트폰(14억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사고팔리는 전자제품이다. 세계 1·3위 컴퓨터 제조업체인 HP와 델은 지난해 중국의 충칭과 쿤산에서 노트북 7000만개를 만들었다. 이 기업들의 대규모 공장이 있는 충칭은 세계 ‘컴퓨터의 수도’라고 불린다. 하지만 언제까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HP와 델이 중국 내 노트북 생산량을 30% 줄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정보기술(IT)기업들, ‘테크 자이언트’들이 미·중 무역전쟁을 피해 중국 내 생산시설들을 옮기려 하고 있다. ‘중국 엑소더스’가 이미 시작됐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일각에선 이들의 탈중국 흐름이 미국의 보복관세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각국의 관심은 중국을 떠나는 기업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G2 무역갈등의 수혜자는 누가 될지에 쏠려 있다.
■ “애플도 MS도 레노보도 떠난다”
차이나 엑소더스를 이슈의 중심으로 만든 것은 지난 3일의 닛케이아시안리뷰 보도였다. 닛케이는 HP와 델,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소니, 닌텐도 등이 이미 중국 생산라인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구글은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마더보드 생산기지를 대만으로 옮겼으며 콴타컴퓨터와 폭스콘, 인벤텍도 서버 생산시설을 대만과 멕시코, 체코로 옮겼다고 전했다. 레노보, 에이서, 에이수스테크도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탈중국 움직임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이 매체는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중국 내 생산시설 중 대략 30% 정도를 외국으로 빼낸다는 데에 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적었다.
중국 환구시보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에 이튿날 이를 반박하는 기사가 실렸다. 하지만 설득력은 적었다. HP는 “미래의 계획과 관련해서는 코멘트할 수 없다”는 응답을 글로벌타임스에 보내왔고, MS는 “닛케이 보도는 부정확하며 중국 생산시설을 옮길 계획이 있다면 우리가 직접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글로벌타임스가 부질없는 노력을 하고 있던 때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기업들의 이전을 내다본 시티뱅크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대만 기술업체들이 중국 본토에서 1000만명가량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 회사들의 30~50%가 중국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티뱅크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 기업들의 제품이 중국 전체 수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100대 기업 중 37개가 대만계다. 이들이 공장 가동을 줄이면 중국에서 일자리 300만개가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응우옌 치 둥 베트남 계획·투자장관(오른쪽)과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가운데)이 지난달 30일 하노이에서 베트남·EU 자유무역협정과 투자촉진협정에 서명한 뒤 협정문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노이 | 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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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반 우려반 멕시코와 체코
유력 후보 멕시코는 미국과 무역갈등, 체코는 화웨이와의 관계 얽혀
베트남 등 어부지리 전망 속 숙련된 노동력·세제 앞세운 인도 만만찮아
세계 공장지도 재편…포천 “중국에 생산본부, 곳곳에 생산망 운용”
중국에서 나가는 기업들은 생산시설을 어디로 돌릴까. 기존 생산시설이 많은 나라들이 우선적인 후보지다. 월드엑스포츠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각국의 컴퓨터와 관련기기 수출액은 총 3803억달러였다. 1위는 1542억달러어치를 수출한 중국으로, 전체 수출액의 40.5%를 차지했다. 중국과 별도로 홍콩도 237억달러어치를 팔았다. 2위 멕시코(7.7%)에 이어 네덜란드, 미국, 독일, 체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이 나라들 중 생산비용과 산업구조 특성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을 대신할 곳으로 멕시코와 체코, 아시아 국가들이 거론된다. 닛케이 보도에서 보이듯 일부 기업들이 이미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의 생산라인 가동을 늘렸다. 하지만 멕시코의 셈법은 복잡하다. 멕시코는 중국과 함께 미국과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멕시코 제품의 수입관세를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시작해 매달 5%씩 올려 올 10월에는 멕시코산 컴퓨터·전자기술제품의 관세를 25%로 만들 방침이다. 고프로와 레노보 등 멕시코 생산량이 많았던 기업들은 오히려 멕시코 탈출을 고민해야 할 처지다.
체코도 사정이 단순치 않다. 생산설비가 아니라 중국, 특히 화웨이와의 관계가 문제다. 중국은 유럽연합(EU)으로의 수출기지로 그동안 체코에 투자를 많이 해왔다. 화웨이는 4년 전부터 체코의 통신인프라를 깔아왔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체코 정부는 “화웨이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는 “체코의 돌변에 화웨이가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밀착했던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반화웨이’로 돌아선 데에는 미국의 압박이 작용했을 수 있다. 미국은 각국 정부를 상대로 화웨이 위협론을 설파해왔다. 지난 2월 중동부 유럽을 순방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대놓고 ‘화웨이 위협’을 경고하는 발언을 했다. 기업들이 멕시코로 가려면 중국 공장과 비교해 관세를 꼼꼼히 따져가며 손익을 계산해야 하고, 체코로 가려면 화웨이와 관련된 보안 걱정에 더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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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최대 수혜자 될까
중국 남쪽 국가들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베트남은 지난달 30일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 협정의 효과를 노리고 이미 중국 기업들조차 베트남 생산시설을 늘려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싱크탱크 메콩이코노믹스의 경제분석가 애덤 매카티는 이 신문에 “EU와의 협정으로 중국에서 베트남으로의 공장 이전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HP는 태국과 대만 공장의 생산용량을 늘리고 있고, 델은 대만과 베트남·필리핀 생산라인을 시험가동 중이다. 아마존 킨들과 닌텐도 게임콘솔은 베트남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MS는 태국과 인도네시아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반면 이전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미국 IT전문매체 실리콘앵글은 시장분석가들을 인용해 “새 생산시설을 돌리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여러 기업들이 길게는 1년 전부터 이전을 준비해왔지만 중국 밖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IT 분석가 패트릭 무어는 이 매체에 “컴퓨터나 서버업체들은 이전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스마트폰 회사들은 옮겨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애플만 해도 그동안 폭스콘과 함께 구축한 중국 내 생산시설의 기술자들만큼 숙련된 노동력을 다른 나라에서 급히 확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애플의 경우 기술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일부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옮기려 한다고 보도했다.
숙련된 노동력 측면에서 볼 때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인도가 유리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 정부가 중국을 떠날까 고민하는 기업들에 손짓하기 위해 우호세제를 적용해주거나 일정기간 세금을 없애주는 ‘택스 홀리데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년 전부터 ‘메이크 인 인디아’ 이니셔티브를 내세워 공장 유치에 앞장서고 있다. 그런가 하면 CNN방송은 올 1~5월 미국의 중국산 제품 수입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 줄어든 대신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한국산 수입액이 늘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4개국을 미·중 갈등의 수혜국으로 꼽았다.
■ 무역갈등 탓만일까
각국 기업들이 탈중국을 준비하는 것이 비단 미·중 무역갈등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미국 상공회의소는 상하이의 외국기업 250곳 중 40% 가까이가 중국 공장의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지난달 7일자 기사에서 “중국의 생산비용, 특히 임금이 올라가는 것도 글로벌 생산체인의 변화를 부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포천 분석을 보면 광둥성 노동자들의 최저시급은 2008년 4.12위안에서 지난해 14.4위안으로 올라갔다. 컴퓨터·정보기술 분야는 탈중국 흐름이 늦게 시작됐지만 섬유·의류공장 등 저임금 업종은 이미 동남아로 옮겨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숙련기술이 필요한 업종도 결국은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국의 ‘보복’이라 주장하지만, 중국 당국과 기업들의 행태가 세계에 보안 우려를 안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것이 ‘슈퍼마이크로 사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슈퍼마이크로라는 서버업체는 미국 관세위협이 아닌 보안 문제로 최근 중국을 떠났다.
지난해 블룸버그통신은 이 회사 경영진이 자사 마더보드에 스파이칩을 심으라는 중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회사 측은 부인했지만 신뢰도가 추락했다. 이 회사 제품을 공급받아온 애플은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 블룸버그 보도를 공식 부인했고 팀 쿡 최고경영자가 나서서 기사 철회를 요청하는 등 시끄러운 파장이 일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피할 수 없는, 중국 당국의 정치적 개입 우려와 기업들의 리스크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대만경제연구소(TIER)의 다슨 추 연구원은 닛케이에 “부품 수급에 변동이 일어나고 생산비용이 올라갈 것이며, 중국 못잖게 미국 기업들에도 충격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 됐든 미·중 무역갈등이 세계 공장지도가 바뀌는 데에 영향을 줄 것임에는 틀림없다. 포천은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을 포기하기보다는, 중국을 생산본부로 활용하면서 (아시아 등) 곳곳의 생산망을 운영하는 방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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