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십이지는 시공을 초월한 유라시아 지역 공통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사 연구자 민병훈 박사,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 출간

연합뉴스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 펴낸 민병훈 박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라시아 지역에 전하는 십이지 문화를 흥미롭게 풀어낸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를 쓴 민병훈 박사가 6월 28일 서대문구 개인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십이지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국한된 문화가 아닙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는 십이지 분수가 있어요. 다소의 지역 차는 있지만 십이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유라시아 공통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아시아사를 전공하고 동서 문명 교류 연구에 천착한 민병훈(65) 박사가 쥐부터 돼지까지 12가지 동물로 이뤄진 십이지(十二支)에 얽힌 이야기를 문명사 관점에서 조명한 신간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를 펴냈다.

학술서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진인진이 출간한 이 책에서 민 박사는 전작인 '실크로드와 경주', 번역서 '빅토리아의 황금 비보'에 이어 그간 축적한 연구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십이지를 새롭게 풀어냈다. 책에 수록한 컬러 도판 약 610건만 봐도 흥미롭다.

지난달 28일 서대문구 개인 연구실에서 만난 민 박사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국립중앙박물관 월간지 '박물관신문'에 유라시아 십이지 문화에 관한 글을 기고한 것이 집필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5년 넘게 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을 지낸 민 박사는 "2014년 6월 정년퇴임을 한 뒤 기존에 수집한 자료를 틈틈이 정리하는 한편, 국내외 고전과 설화 등을 조사하고 동서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도판을 모았다"며 "십이지 문화를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나아가 유라시아 차원에서 살피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십이지 동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인식에 차이가 있지만, 대개 인간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지역적 특색이 반영돼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문화의 변용 현상도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중국 시안에서 나온 십이지 도용
[민병훈 박사 제공]



민 박사는 십이지 중 첫 동물인 쥐에 얽힌 설화 '쥐 시집가는 날'을 소개했다. 이 이야기에서 늙은 쥐 부부는 딸을 결혼시키려고 태양·검은 구름·바람·벽을 찾아갔다가 결국 고양이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으나, 안타깝게도 고양이에게 딸을 잃는다.

그는 중국 연화(年畵·새해에 행운을 기원하며 벽 등에 붙이는 그림)에 등장하는 이 설화가 인도와 베트남에도 널리 알려졌다고 했다.

이어 재물과 복덕을 관장하는 신으로, 쥐를 손에 쥔 다문천(多聞天)이 국내에서는 무신으로 재탄생했다면서 "지금도 중국에는 다문천이 재화를 토해내는 몽구스와 함께 묘사된 사례가 많지만, 호국신앙이 절정에 달한 한국에서는 유독 무신의 성격이 부각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문화 간 유사성과 차이점은 다른 십이지 동물에서도 나타난다.

민 박사는 "사자를 잡는 그리스 헤라클레스 도상이 동아시아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인물과 호랑이 도상으로 변한다"며 "산신이 호랑이를 거느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점이 특이하다"고 말했다.

그는 토끼와 관련해서는 "둔황(敦煌) 벽화에 있는 삼토도(三兎圖)를 보면 토끼 세 마리가 삼각 구도를 이룬다"며 "토끼 목에 매달린 스카프가 휘날리는 것이 인상적인데, 동물 목에 매단 스카프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했다"고 덧붙였다.

또 조로아스터교에서 개는 영혼이 사후 심판을 받는 장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일부 중국 유적은 물론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개도 저승에서의 만남을 주관하는 안내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죽은 자의 영생을 기원하는 조로아스터교 멧돼지 도상은 경주 식리총에서 발굴한 금동신발과 불국사 극락전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기 위해 만든 구조물)에 있는 돼지에도 영향을 줬다고 역설했다.

연합뉴스

산양을 사냥하는 사산조페르시아 제왕
[민병훈 박사 제공]



용은 치수(治水)와 호법(護法) 상징, 뱀은 다산과 풍요를 암시하는 동물로 각각 설명한 민 박사는 양에 대해선 서아시아에서 영원한 왕권을 표현한 존재라고 했다.

그는 "양의 뿔은 떨어지면 다시 자라서 재생과 관계있는 동물로 인식된 것 같다"며 "양 머리나 몸에서 피어오르는 수목 장식이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쓰촨(四川)에서 모두 확인된다"고 전했다.

민 박사는 다음 책으로 근현대 실크로드 탐험대가 보물을 약탈한 과정을 정리하고 유물 관리 현황을 기술한 '실크로드 탐험사'와 이슬람 미술에 나타나는 상징을 일반 독자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는 '이슬람 문화의 이해'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터키 톱카프 궁전은 동서 문화 교류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유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이슬람이 곡해된 나라가 또 없는 것 같아요. 화려한 이슬람 건축 문양에 하나하나 숨겨진 코드를 상세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부탄 십이지 우표
[민병훈 박사 제공]



psh5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