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운용 책임자 빠지고 지역상생·인사·교육 담당자만 참석
기금고갈 늦추려면 협력 필요한데…"협력 생각있나 의구심"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적립금이 올해 4월 말을 기준으로 690조원에 도달했다. 2010년 324조원 수준이었는데 불과 9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앞으로도 20년 넘게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투자업계는 돈이 쌓이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수익 극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공단은 다소 미온적인 태도로 업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과 금융투자업계 대표자들이 27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간담회를 열고 있다. / 금융투자협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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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본부장 없이 자본시장 간담회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전날인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금융투자업계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김 이사장이 금투업계와 공식적으로 만난 건 2017년 11월 취임한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어렵게 성사된 자리인 만큼 행사장에 모인 증권사·자산운용사 대표들은 ‘자본시장의 큰손’을 향해 모험자본 투자 확대, 해외 대체투자 협력 강화 등 여러 제안을 쏟아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금투업계가 제시한 대부분의 협력방안에 답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투자 의사결정 권한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제안은 국민연금 내부 투자위원회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었으나 김 이사장은 "기금 운용에 관해서는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한다"며 말을 아꼈다.
문제는 기금본부를 이끄는 안효준 본부장(CIO)이 이날 다른 일정으로 간담회에 불참했다는 점이다. 김 이사장 양 옆에는 김선규 공단 사회적가치실현단장과 이말용 기금본부 운용지원실장이 앉았다. 사회적가치실현단은 국민연금의 동반성장·지역상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운용지원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역들의 인사·보수·교육 등을 책임지는 부서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금투업계와의 대화인데 공단 이사장은 본인 역할의 한계를 거론하면서 선을 긋고 CIO는 아예 오지도 않았다"며 "(국민연금이) 시장과 협력할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민연금과 금투업계가 교류의 장을 열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이번 참석자 구성을 보면 양측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모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기금고갈 늦추려면 협력 서둘러 강화해야"
국민연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기금의 투자처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수익성도 극대화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국내투자 비중을 줄이고 해외투자를 늘리는 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또 같은 이유로 주식·채권 등의 전통자산 의존도를 낮추고 부동산 등 대체투자 역량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이런 중장기 자산배분 전략이 성공하려면 금투업계와의 협력 관계를 하루라도 빨리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단이 모든 자산 투자를 도맡아 할 수 없는 상황에선 업계와 힘을 어떻게 합치느냐에 따라 기금 고갈 시기가 크게 앞당겨질 수도 미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41년 1778조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적자로 돌아서 2057년쯤 소진된다. 금융위원장과 국민연금 이사장을 역임한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기금 고갈은 5년 정도 앞당겨진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했으므로 기금 고갈은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고갈은 모든 경제활동 인구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국내 증시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이 연금 지급을 위해 투자자산 매각에 나설 경우 시장은 엄청난 충격에 빠질 수 있어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에 국민연금과 금투업계가 논의를 정례화한다고 발표했는데, 정치적 구호가 아닌 생존을 위한 진지한 고민의 만남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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