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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국회 열렸지만 추경안 통과 불확실…"효과 사라지나" 속타는 기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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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주장 일부 관철되면서 6.7조원 통과 불투명
당초 계획보다 두달 지연…규모까지 줄면 추경효과 미미

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80일 공백을 딛고 문을 열었지만,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한 기획재정부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추경 예산 심의는 재해 추경을 우선적으로 진행한다’는 여야 합의 내용 때문이다.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에 반대한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이 일부 관철된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6조7000억원의 전체 추경 예산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추경안 처리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예산 규모마저 줄면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추경 예산안 규모와 구성 내역이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추경 예산안이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정부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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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30일 오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기조발언을 위해 단상으로 향하며 이해찬 대표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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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지난 24일 이낙연 국무총리의 추경예산 관련 시정연설을 하면서 6월 국회 일정을 시작했다. 선거법 개정과 공직자수사처 설치 등을 둘러싼 패스트트랙 파동으로 국회가 파행된지 80여일 만에 정상화된 것이다.

이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협의를 통해 6월 국회 일정과 관련된 5개의 합의사항을 도출했다. 이 합의에 따르면 여야는 이달 28일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구성을 완료하고 추경 심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추경안 심사는 다음달 17일까지 완료해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자유한국당이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거부하면서 무효화 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합의안의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6월 국회 개원 협상의 쟁점이었던 추경안 심사 방식과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경제원탁토론회’ 개최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 없는 절충안 정도의 수준에서 합의한 게 화근이었다.

이날 합의는 국회의장 주관으로 국회 차원으로 열리는 경제원탁토론회 형식과 내용은 3당 교섭단체가 추후 협의해 결정한다고 최종 결론을 미뤘고, 추경안에 대해서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되 재해추경을 우선 심사한다는 내용이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여당측에서 토론회에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참석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대신 ‘추경안 처리’를 전제조건으로 재해 추경을 우선적으로 심의하기로 해서 추경안 분리 심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만든 것 같다"면서 "합의안이 한국당 의총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취약한 구조였다"고 전했다.

다른 야당 관계자는 "비록 무효화된 합의였지만, 여당이 추경안을 일괄 심의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원칙에서 물러선 것이 눈에 띄었다"면서 "재해 추경만 통과된다면 추경안을 모두 처리하기 위해 추가로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여권의 속내가 드러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회 정상화 협상을 둘러싼 해프닝은 추경에 대한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안팎에서는 6조7000억원에 이르는 추경 예산안이 온전한 형태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6조7000억원의 추경 예산안 중 재해 추경은 2조2000억원, 경기대응 추경은 4조5000억원에 이른다.

한국당 안팎에서는 3조6000억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서 추경을 편성하는 것에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경기대응 추경을 저지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4조5000억원 규모 규모 경기 대응 추경은 총선용 선심 예산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여야가 이날 우선 심의 합의를 한 재해 추경안만 심의, 처리하는 방식으로 전격적인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추경 예산이 정부 제출안에 비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추경 심의가 늦어진 상황에서 만약 추경이 부분적으로만 통과된다면 추경 효과가 기대에 훨씬 못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기재부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제출한 추경 예산안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조(兆) 단위로 감액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가뜩이나 현시점에서 추경이 통과되더라도 추경의 성장률 효과는 당초 기대의 반토막 이하 수준이라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정부는 6조7000원의 추경 예산이 6월부터 집행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0.1%p(포인트)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추경 예산 집행 시기가 점점 줄고 있다. 여야 합의대로 7월 17일에 추경안 예산이 통과된다고 해도 8월 이후에야 집핼돼 돈을 쓸 수 있는 시기가 두 달 이상 줄어든다. 성장률 제고 효과가 당초 기대 수준의 반토막 이하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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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3일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해 및 건전재정 추경 긴급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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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편성된 예산을 6~8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집행하도록 설계를 했는데, 집행시기가 단축되면 사용할 수 있는 예산도 축소된다.

예컨데 정부가 추경으로 8000억원을 투입해 실업급여 대상자를 기존 120만8000명에서 131만5000명으로 늘리겠다는 방안은 1인당 6만6000원을 최장 8개월 동안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예산 집행시기가 줄어드는 만큼 편성된 예산을 쓰지 못하는 불용액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사례처럼 추경안 처리가 늦춰지면 추경안이 정부 안대로 통과되더라고 4조5000억원의 경기 대응 예산은 상당 부분 불용액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추경안 집행이 8월 이후에 시작되면 재정 확대를 통한 성장률 제고 등 부양 효과는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면서 "추경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고, 추경을 통해 성장 하방 위험을 방어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정부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추경안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능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증폭될 수도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기재부는 연초 추경 편성 불가 입장을 고수하다 ‘추경으로 미세먼지에 대응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빚을 내 추경을 편성하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정치권 정쟁으로 추경안 심의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추경 편성 당시의 혼선과 규모 및 재원을 둘러싼 논란을 방치한 것은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능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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