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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부패 총리 물러나라”…체코서 동구 사회주의 붕괴 뒤 최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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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보조금 유용 스캔들 혐의

억만장자 기업인 출신 바비스 총리

“30년 다져온 민주주의 지키자”며

시민 25만명 모여 사퇴 요구 시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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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25만명이 ‘총리 퇴진’을 외치는 시위에 나섰다.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 뒤 최대 규모의 시위다.

체코 시민들은 23일 저녁 프라하의 레트나 플레인 공원에 모여 유럽연합(EU)의 보조금 유용 스캔들 등에 휘말린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체코 이동통신사 티(T)모바일은 네트워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25만8000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달 4일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서 한 시위(12만명)보다 참가자가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75만명이 참가한 벨벳혁명 이후 최대 규모다. 레트나 플레인 공원은 30년 전 벨벳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체코 시민들이 독재정권을 쫓아낸 신성한 땅에 모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바비스 총리는 체코에서 두 번째 가는 억만장자 기업인 출신인으로, 반이민·반유럽연합 등의 정책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체코의 트럼프’로도 불린다. 체코의 고질적 부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2017년 총리가 됐지만, 정작 자신이 소유한 농업기업 아그로페르트가 200만유로(약 26억원)의 유럽연합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체코 경찰은 4월에 바비스 총리에게 사기 혐의가 있다고 발표하며 기소 여부 결정을 검찰에 넘긴 상태다.

바비스 총리는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직후 혐의를 전면 부정하며, 법무장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측근을 앉히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총리의 이런 행보가 삼권분립 훼손 논란으로까지 번지면서 두 달째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시위 과정에선 바비스 총리가 과거 사회주의 정권 시절 비밀경찰로 활동했다는 이력도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시위에 참가한 기술 컨설턴트 시몬 바르치(31)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지난 30년간 우리가 다져온 민주주의를 총리가 파괴하려고 한다”며 “법치주의가 지켜지지 않던 동구권 시대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야당의 요구로 26일 바비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그가 설립한 정당 ‘불만 있는 시민들의 행동’이 최다 의석을 차지한 데다, 중장년층과 농촌의 지지세가 여전해 불신임 투표가 가결될지는 미지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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