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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수돗물 유충 사태

인천 붉은 수돗물 사고의 위기관리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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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부냐!”. 많은 시민들이 인천시를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참담하고 아픕니다. 시민들께서 느끼셨을 분노와 배신감이 어떨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지난 18일 시민들 앞에 다시 머리 숙여 사과 하면서 밝힌 심경이다. 박 시장의 요청을 받아 환경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중앙정부의 합동조사단은 같은 날 사고 원인을 낱낱이 공개했다. 인천시의 무능과 초기 대응 실패, 사실 은폐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방 정부가 자신의 문제를 중앙정부에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중앙 정부가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직설 화법으로 언급한 것도 매우 드문 사례였다.

위기관리에 있어 최선책은 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차선책은 위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인천시는 이번 수돗물 사고에서 둘 다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이와 유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와 운영을 혁신하고 만신창이가 된 인천시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추락한 이미지를 만회하는 것은 백지상태에서 새로 만드는 것 보다 몇 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만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위기(危機)’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조직을 위태롭게 하지만 동시에 기회를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늦었지만 지금 부터 하기 나름이다.

인천시 공무원들 중에 만에 하나라도 이번 사고를 ‘재수가 없어서’ 발생한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이 잊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인천시의 위기관리 능력이 지금보다 크게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지금의 참담함을 잊지 말고 조직과 운영을 근본적으로 쇄신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맑은 수돗물을 다시 공급하는 비상조치와 더불어 이번 사고의 원인과 대처 과정을 면밀히 복기하면서 인천시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대처했어야 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붉은 수돗물 사고 원인부터 정리해 보자. 환경부가 구성한 정부원인조사반이 밝힌 사고발생원인은 무리한 수계 전환이다. 조사반은 인천시의 사전 대비 및 초동대처 미흡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조사반은 평상시 공촌정수장에서 영종지역으로 수돗물을 공급할 때는 자연 유하방식을 적용했으나 이번 수계전환 시는 가압하여 역방향으로 시행했고, 역방향 수계 전환 시는 관 의 흔들림, 수충격 부하 등의 영향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물질 발생여부를 확인한 다음 공급량을 서서히 늘려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아 관로 벽에 부착된 물때가 떨어져 관 바닥 침적물과 함께 검단·검암 지역으로 공급 되어 초기 민원이 발생되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5시간 후 공촌정수장이 재가동될 때 기존 공급방향으로 수돗물이 보내짐으로서 관로 내 혼탁한 물이 영종도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정부합동조사반은 인천시가 상수도 통수·수계전환·준공 기준도 준수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국가건설기준에는 상수도 수계 전환 시 수계전환지역 배관도, 제수 밸브, 이토밸브, 공기밸브 등에 대한 대장을 작성한 후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도출된 문제점은 통수 전에 대책을 수립하는 등 사전에 준비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인천시는 밸브 조작 단계별 수질변화에 대한 확인계획을 수립하지 않아 이물질(물때 등)에 적기 대처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수계전환에 따라 공촌정수장 계통 배수지 탁도가 수계전환 이전 평균 보다 대폭 상승한 것이 확인되었음에도 초동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을 놓쳤다고 밝혔다.

정부합동조사반은 기술적으로 상세하게 사고 원인을 밝혔지만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지난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대놓고 인천시의 무책임과 무사안일을 질타했다. 한마디로 말해 매너리즘에 빠진 담당 공무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수계 전환을 함으로써 발생한 ‘인재’라고 규정한 것이다. “수계 전환에 통상 10시간 정도 걸리는데 10분 만에 밸브를 열어 압력을 올리고 2~3시간 만에 물을 다른 방향으로 보냈다”, “물의 탁도가 올라가고 부유물질이 생기는 것도 예상 가능한 일인데 모든 것을 다 놓쳤다”고 지적했고, 인천시는 사태 초기에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환경부의 개입을 막았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박 시장은 환경부 발표 이후 부실했던 초기 대응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모든 방법과 가용 자원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임을 밝혔다. 동시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상수도본부장과 공촌정수사업소장을 직위해제하고 외부 감사기관에 감사를 의뢰해 그 결과에 따라 추가 인사 조치를 할 계획을 천명했다. 사고 원인이 규명되었고, 인천시 뿐만 아니라 환경부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인천시의 붉은 수돗물 사태는 금명간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시장이 언급한 바 있으니 앞으로 안정적인 수돗물 관리를 위한 위기 대응 매뉴얼도 준비되고 위기관리 시스템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하면 인천시 수돗물 사태가 모두 해결되고 실추된 이미지도 회복 될 수 있는 것일까? 인천시와 환경부의 발표를 보면 단기 수습책으로 급할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민들 뇌리에 각인된 인천시의 무능과 부실한 일 처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는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시가 시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의 대안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박 시장은 이번 사태를 보다 큰 차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사고는 수돗물에서 발생했지만 사태 처리 과정을 보면 인천시 일선 공무원들의 업무 자세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번 사고가 수돗물 관련 부서에 국한된 문제이길 바라지만 인천시 행정 전반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수돗물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책임자를 징계하고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을 고쳐도 ‘사람’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박 시장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오랜 행정 경험과 치밀한 업무 처리 능력을 갖고 있는 박 시장이니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천시의 행정문화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길 권한다.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 만큼 외부 기관에 의뢰해 원인과 책임 규명을 하고 있지만 이는 비상적인 조치이다. 인천시 공무원들의 행태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위한 조치임이 이해되나 앞으로 박 시장과 더불어 시정을 책임질 사람들은 미우나 고우나 지금의 인천시 공무원들이라는 현실도 간과하지 않기 바란다. 잘못된 행정 문화에 젖어있는 공무원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꾼다는 것이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작해야한다. 무사안일하고 무책임한 행정문화가 자리 잡은 원인을 찾아 개선책을 강구하는 한편, 이들이 자긍심과 책임감을 갖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길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러한 노력을 해야할 지에 대한 평가 기준은 명확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천시 공무원들의 근무 자세와 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시민들이 인정할 때 까지 멈추지 말고 지속적인 혁신 교육, 위기관리 교육을 추진해 볼 것을 제안한다. 교육과 학습이 지루하고 뻔하다 할 수 있지만 반복하다 보면 몸에 배게 마련이다.

둘째, ‘신속성(Quick)’, ‘일관성(Consistency)’, ‘개방성(Openness)’이라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3대 원칙의 중요성을 재인식 하기 바란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관해 국내외 유수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칙이다. 이번 붉은 수돗물 사태는 사고 자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사고 발생 후 인천시가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3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원칙과 어긋나게 대응함으로써 시민들의 분노를 가중시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수돗물은 시민들이 일상으로 먹고 사용하는 생필품으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수돗물에 이상이 발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한참 고통을 받고 난 20일 후에야 원인이 밝혀졌다. 또 환경부 수돗물 안심지원단은 22일부터 복구조치에 따른 수돗물 수질의 변화를 급수 계통별로 모니터링하고, 수질상태가 매우 심각한 민원가정을 매일 방문해 실태조사 및 수질분석을 실시하며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조치야 말로 사태 발생 초기부터 인천시가 했어야할 일이고, 그 과정을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해 나갔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 대처의 타이밍을 놓치다보니 인천시는 시종일관 언론과 시민들로부터 매를 맞고 비판 여론에 끌려 다니며 해명하기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일관성은 한 목소리(one voice)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인천시의 초기 설명과 환경부의 발표는 극단적으로 대비되었다. 인천시의 설명도 수시로 바뀌었다. 인천시의 발표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시장이 소속 공무원의 발표를 불신하는데 시민들이 공무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하겠다. 인천시는 정보 공개에 있어서도 투명하지 못했다. 은폐설이 언론에서 언급될 정도로 사고 발생 이후 솔직하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사태 수습과정에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무지로 상황을 악화시킨 점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광역 자치단체인 인천시는 종합행정을 하는 곳이다. 수돗물뿐만 아니라 상시적으로 다양한 위기관리 이슈에 직면하게 되어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천시 공무원들이 위기 발생 시 신속성, 일관성, 개방성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실히 인식하기 바란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소통 역시 같은 무게로 해야 할 일임도 명심할 일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책의 절반이 소통’이라며 국민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책이 소통이다’. 위기관리도 다르지 않다.

[유재웅. 을지대학교 의료홍보디자인학과 교수. 신문방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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