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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안혜리의 직격인터뷰] 노조를 적으로 삼기에 문재인 정부는 간이 너무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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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없어 ‘소주성’ 조율 못해

부작용 불구 소비 개선 효과

노조 주인행세로 경쟁 없는 은행

금융혁신해 기술벤처 키워야

기술벤처 창업 독려 책 낸 김진표 의원
중앙일보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김진표 의원이 금융혁신을 통해 기술벤처 창업을 독려하는 책을 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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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의원이 24일 출간하는 『구직 대신 창직하라』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거쳐 문재인 정부 인수위에 해당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은 경제통으로 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입안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난 보수 정권에서부터 줄곧 주장해오던 ‘창업’ 얘기를 들고 나왔다. 신간 『구직 대신 창직하라』에서 안정만 추구하는 활력 없는 대기업 중심 사회에 우려를 표하면서 금융개혁을 통한 기술벤처 육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현 정부 경제정책 입안자답게 책의 전반부는 소득주도성장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24일 출간을 앞두고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 744호에서 만났다.



Q : 책을 보니 소득주도성장(소주성)과 관련한 언론 보도에 불만이 많더라.

A : “진보 정권은 주류 언론에 피해의식이 좀 있다. 소주성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한국 정부에 권고한 사항이다. 기대한 낙수효과가 없으니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OECD뿐 아니라 IMF(국제통화기금)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가 다 그랬다. (※책엔 2015년 OECD가 대기업 위주의 수출 정책 재고를 권고했다고 나와 있다) 야당 시절 주장했지만 어느 언론도 깊이 있게 안 다뤘다. 오히려 경제에 무식하고 무능한 야당의 발목잡기라고 폄하했다. 그런데 2017년 대선 당시 시행하겠다는 시기만 달랐을 뿐 5개 정당 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똑같은 공약을 발표했다.”




Q : 현실을 외면한 속도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A : “문재인 대통령이 억울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하루아침에 5000만 국민의 삶을 바꾸는 일이다. 추진 전에 세밀하게 조율되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통상 인수위 때 바로잡는다. 가령 참여정부 인수위 시절엔 노무현 대통령이 뭘 하겠느냐고 묻더라. 대선 때 전국을 다니며 못 지킬 약속을 많이 했으니 정책 로드맵을 발표해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언론이나 이익단체가 문제 삼더라도 ‘선거 땐 몰랐는데 공무원들과 실무적으로 검토해보니 도저히 지금은 안 될 것 같으니 연기하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정부는 인수위 기간이 없었다. 정권 초부터 거짓말쟁이에 배반자로 몰리면 아무것도 못 한다. 남북문제 등 정책과제가 많은데 핵심 지지세력이 정면으로 반대하면 추진 동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노조에 한 약속을 5월 11일 취임하자마자 안 한다고 할 수 없다. 노조를 적으로 삼기엔 간이 너무 작았다.”




Q : 당시 부작용 우려는 없었나.

A :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속도를 늦춰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대선 캠프에서 정책 입안하던 사람을 비롯해 정치인 출신 인수위(국정기획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장관을 빨리 임명해서 현장에 맞는 보완책을 내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를 봐라. 초기에 혼란이 있었지만 안정되지 않았나. 막상 2년을 해보니 자영업자가 많은 우리 경제구조에서 저소득층 고용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왔다. 그래서 지난 2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해 속도 조절에 들어간 거다. 최저임금 동결뿐 아니라 인하까지 당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5개 소상공인 단체가 최저임금 동결과 사업장 규모별 차등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더라. 업종이나 규모별 차등화는 검토할 만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지역 차등화는 해외에서도 실패했고 저임금 노동자가 사는 지역이라는 식의 차별이 될까 봐 정치적으로 채택하기 어렵다.”




Q : 주 52시간 근무시간 단축 문제도 만만치 않다.

A : “지금은 300인 이상 종업원을 둔 사업장에만 적용돼서 최저임금에 비해 아직 시간이 있다. 탄력근로제가 쟁점인데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50~300인 사업장엔 반드시 6개월로 확대해야 한다. 50인 이하 사업장엔 6개월이 아니라 1년이라도 확대하는 쪽으로 당내에선 컨센서스가 있다. 청와대도 말을 못 할 뿐이지 비슷한 생각이다.”




Q : 문 대통령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나.

A : “인정하지 않았나. 다만 ‘죽을죄를 졌습니다’하고 사과하면 정권 유지 동력이 없어지니 그럴 수 없다. 또 속도 조절하면 혁신 효과를 얻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효과를 보려면 2~3년이 필요하고 통계 입증도 쉽지 않다. 다행히 고용지표가 좋아졌다. 고용 근로자 평균 임금이 15%는 올랐을 거다. 소비심리 좋아진 건 소주성 효과 외에 설명이 안 된다. 저소득층 실직 증가는 근로장려세제 등 복지정책 확대로 해결하면 된다. 문 대통령에게 이제부터는 이걸로 싸우지 말자고 했다. 더 이상 보완책도 없으니 그 얘긴 그만하자고 했다. 그래서 나온 게 경제활력, 기술벤처 육성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주년 특별대담에서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다”며 공약대로 인상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Q : 지난 보수 정권을 거치며 창업 붐이 정체됐다고 비판했는데.

A : “1970년대는 김우중 같은 수출벤처, 2000년대엔 IT벤처 창업 열풍이 불었다. 우리 DNA엔 분명 도전정신이 있는데 외환위기 이후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정부가 재벌 위주 정책을 편 데다 대기업이 유통을 다 장악해서 새 부자가 나오기 어려웠다. 그러니 엘리트가 창업 대신 공무원이나 대기업 같은 안정을 추구한다. 정책 실패 탓이다. 대기업 중간관리급 엔지니어 가운데 창업 욕구 많다. 본인이 100%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니 못 나온다. 퇴직금으로 사업하는 문화는 안 된다. 금융이 제일 큰 장벽이다. 금융이 변해야 한다.”




Q : 어떻게 변해야 하나.

A : “외환위기 전엔 은행 운용자금 80%를 기업에 몰아줘 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부추기더니 IMF 후엔 적정선 60% 아래인 47%로 확 줄었다. 은행에 주인이 없어 벌어지는 문제다. 은행장은 있지만 노조가 주인 역할 하며 부동산 담보대출 같은 안정 위주 경영에 안주하고 즐긴다. 경쟁을 모른다. 그래서 금융위원회 주도로 혁신중기에 100조 원을 공급하는 모험자본 육성 방안을 내놓은 거다. 융자에서 투자로 체질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대안은 금융에 주인을 찾아주는 거다. 기존 은행을 민영화하기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지만 IT 기업 중심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으로 업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국내 핀테크는 중국에 10년 뒤처져 있다. 이러다간 중국과 일본에 먹힌다. 성공 모델이 나오면 기존 공룡 은행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소비자는 빠르게 변하는데 은행만 변화를 거부한다. 미국 금융사는 엔지니어가 60%다. 우리 금융사도 기술 보는 눈이 있는 엔지니어가 주력부대가 돼야 한다. 금융사 연구개발(R&D) 비용이 미국의 800분의 1이다. 융자로 먹고사는데 투자하면 바보다. 그걸 바꿔야 한다. 정부가 지시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돈 벌기 위해 스스로 변해야 한다. 기술벤처 투자로 경쟁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Q : 변화 거부하는 금융만큼 정부의 규제 폐해도 심각하다.

A : “맞다. 곳곳에 규제 마인드가 자리 잡고 있다. 금감원·금융위 할 것 없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는) 은산분리가 금융을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다. 은산분리는 완화해야 한다. 가장 큰 규제 완화는 민영화지만 결국 대기업에 갈 수밖에 없어 정치인으로서 조심스럽다. 그래서 나온 게 기술벤처 육성 전략이다. 5대 금융사가 28조 원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현재로선 금융사를 독려하는 거 외에 실효 있는 정책이 없다. 드라이브를 거는 거다. 국내 유니콘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 8곳 중의 4곳이 벤처캐피탈(VC) 알토스벤처스 김한준 대표의 투자를 받아 성장했다. 이렇게 성공사례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에게 아이디어를 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나온 기업 가운데 매출 1000억 원 넘는 곳이 3000곳은 될 텐데, 잘 지원해주면 1%는 성공할 게 아니냐. 문 정부 임기 내 유니콘 기업이 30개만 나오면 사람들 인식이 달라질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제2벤처붐 전략’을 발표하면서 4년간 12조 원 투자를 창출해 “한국의 유니콘 기업을 2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Q : 뜻은 좋지만 또 다른 관치 아닌가.

A : “아니다. 언론 역할을 대신 하는 거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변명하면서 규제를 풀어주고. 여야를 막론하고 시민단체 출신이 많다. 우리 당 정무위 정재호 간사가 규제 샌드박스 시행을 위한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통과시키려고 의원들 설득하다가 열 받고 쓰러졌다. 박영선 장관도 그때 반대했다. 난 정무위도 아니지만 우리 당 모든 의원에게 편지 썼다. 우리 금융은 주인이 없어 혁신을 안 하고 노조가 원하는 경영을 하는 게 문제인데 정부까지 그편을 들면 다 망한다고. 물론 규제 샌드박스도 지금은 그 안에 규제가 또 센 문제가 있다. 그걸 풀어줘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성공신화를 만드는 거다. 이걸로 야당과 언론의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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