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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기고]따오기 ‘36Y’가 바꾼 우포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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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따오기 야생방사 한 달

탐방객 관심·사랑 늘어나면서

사람과 자연의 교감 장소로

경향신문

최근 방사된 우포늪 따오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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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노을 빛깔을 뽐내며 우포 하늘을 날아오르는 야생따오기 모습은 눈부시다. 40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우포 따오기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관찰하는 일은 큰 기쁨이다.

우포 따오기 야생방사 27일째인 지난 18일, 늦게까지 먹이활동을 하고 잠자리로 떠나는 36Y(따오기복원센터에서 방사하면서 붙인 따오기의 일련번호)를 관심 깊게 관찰했다. 매일 만나는 이 녀석에게 골목대장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이 친구는 다른 따오기들이 좋아하는 미꾸라지보다 복원센터 앞 버드나무 길 숲속의 습한 곳에 사는 지렁이를 좋아한다. 하루 종일 이곳에서 왔다 갔다 하고, 간혹 길가로 나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이 따오기가 혹시 사고라도 당할까 가슴을 졸이며 지켜본다. 필자는 휴일에 자전거를 타고 이곳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십시오. 따오기가 길가에 놀고 있습니다.” 오늘도 36Y는 57Y와 함께 숲속에서 먹이를 잡다가 57Y가 오후 6시50분쯤 복원센터 방향으로 떠나자 슬그머니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부리를 좌우로 땅에 비비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잠시 후 논 안으로 들어가 미꾸라지를 잡아보다가 시원찮은지, 다시 논둑에서 잠시 머물다가 7시1분쯤 날아오른다. 내가 있는 쪽이 아닌 반대쪽으로 날아 늪 쪽 미루나무를 따라 제1전망대 근처에서 복원센터 안 잠자리로 돌아가는 듯하다. 대부분 따오기들은 먹이터에서 날아오르면 복원센터 안으로 바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36Y는 항상 오후 7시쯤 늪 안쪽으로 날아올랐다가 복원센터 안 잠자리로 돌아간다.

따오기가 머문 흔적을 찾기 위해 우포늪 주변의 잠어실과 노동마을 등도 돌아봤다. 잠어실마을 앞에서 만난 마을 이장은 2~3일 전 따오기 두 마리가 마을 앞 쪽지벌 길가를 어슬렁거리는 사진 두 장을 보여줬다. 노동마을에서는 집 앞 전봇대에 앉은 따오기를 보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직 창녕 외에 다른 시·군에서 따오기를 목격했다는 증언은 없지만, 따오기들은 늪 주변과 강변을 오르내리며 잠자리로 이용할 숲을 찾고 있을 것이다.

따오기가 야생으로 나간 이후, 많은 탐방객들이 우포늪을 방문하고 있다. 이미 복원센터에서 보호 중이던 따오기를 관찰했던 탐방객 중에는 “사실 새장에 갇혀 있던 따오기는 예뻐 보이지도 않았고 따옥따옥 소리는 비명처럼 느껴졌지만, 새장 밖으로 나와 행복해 보이는 따오기를 보면 나도 행복해진다”고 고백하는 이도 있다. 서식지와 탐방로를 마음대로 오가는 따오기를 지켜주기 위해 멀찍이서 숨죽이며,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36Y는 바로 이 공감을 이끌어내는 요체가 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따오기를 관찰하면 그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태배움터가 된다. “얘들아! 따오기 노래, 이 할아버지가 가르쳐줄까?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같이 온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배우지 못한 따오기 동요를 불러보자며 권하면 아이들은 신기한 듯 노래를 따라 부른다. 콘크리트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을 보며 가지게 되는 부채감, 어쩌면 혐오감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행복한 자연동물원이 우포늪에서 탄생하는 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포늪은 1997년 자연생태계보호구역(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1999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곳이다.그런데 최근 따오기가 야생으로 나오면서 한번이라도 가까이에서 따오기를 본 사람들은 자기와 눈맞춤을 한 그 녀석이 지금도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고 한다.

경향신문

따오기 복원 과정이 조금씩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한 다른 형태의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지켜보면서 생물종 복원을 통해 국내 보호지역도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야생생물의 서식처를 확대함과 동시에 사람과 자연의 교감 장소로 이용되기를 기대한다. 언젠가는 멸종위기종을 복원하고, 한반도에서 다친 야생동물들을 모아 사람이 돌봐주는 ‘우포자연공원’을 만들겠다는 꿈을 실현할 날도 곧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오늘도 휴일을 반납한 채 우포늪에서 자원봉사 지킴이로 나선다.

이인식 우포늪 지킴이 우포자연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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