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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아파도 못 쉬어, 실신은 흔한 일”…울분 토하듯 쓴 시엔 “삼성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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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②산재

국제환경노동단체 보고서 단독 입수

삼성, 하루라도 쉬면 월급 깎아

생리불순, 유산 잦아

유엔, 삼성 노동자 인권 침해 우려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는 이제 한국만의 기업이 아니다. 초국적 기업 삼성전자는 세계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특히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로 떠오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은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한겨레>가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3개국 9개 도시를 찾았다. 2만여㎞, 지구 반 바퀴 거리를 누비며 129명의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설문조사했다. 국제 노동단체들이 삼성전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한 적은 있지만, 언론사 가운데는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시도다. 10명의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했고, 20여명의 국제 경영·노동 전문가를 만났다. 70일에 걸친 글로벌 삼성 추적기는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던 불편한 진실을 들춘다.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당장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판단한다. 5차례로 나눠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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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신하는 사례는 많이 있어요. 밤낮이 자주 바뀌니까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아요.”

“저번에 병원에 갔다 온 동료는 종양이 발견됐다고 했어요. 저도 그럴까 봐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가고 있어요.”

베트남 시민단체 시지에프이디(CGFED)가 2017년 3월4일 삼성전자 공장 노동자와 진행한 인터뷰 중 일부다. 시지에프이디와 국제 환경단체 아이펜(IPEN)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삼성전자 박닌 공장 21명과 타이응우옌 공장 24명 등 노동자 45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보고서를 발표했다. 르우티타인떰(사망 당시 22살)이 타이응우옌 공장에서 숨진 건 인터뷰가 시작되기 3개월 전인 2016년 8월이다. 떰과 같은 시기에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건강은 무사했을까. <한겨레>가 인터뷰 녹취록 일부를 입수해 분석했다.

“공장에서 실신은 흔한 일”

노동자들은 실신이나 생리불순 같은 증상을 두고 “통상적인 것”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신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물음에 한 노동자는 “우리 라인에서는 없는데 다른 라인에서 많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야간 근무 때문에) 자주 밤을 새우면 불면증에 걸려서 다시 아침에 출근할 때 너무 힘들다. 게다가 공장에서는 서서 일하니까 다리가 저리고 어지러워 쓰러진다”며 “여기서는 이렇게 실신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다른 노동자는 “어지러움은 통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대 근무 때문에 생활 주기가 계속 바뀌니까 잠을 잘 수가 없다. 교대가 바뀐 직후에는 몸이 약해져서 (정상 체력의) 60~7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팜티민항 시지에프이디 부단장은 “인터뷰에서 박닌과 타이응우옌 노동자들 모두 실신은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며 “또 인터뷰에 참여한 노동자 중 3명이 직접 유산을 경험했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여성 노동자가 생리불순을 겪었다. 한 노동자는 “생리불순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삼성에서 일하기 전에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최근 피 색깔이 검어지고 양도 줄었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도 “(삼성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갑자기 이렇게 됐다. 계속 이러면 병원에 가야겠지만 무섭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말끝을 흐렸다.

노동자들은 문제의 원인과 심각성을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이들은 “삼성 노동자 중에 불임이 많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생리불순에 대해서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화학물질에 관해 묻자 한 노동자는 “화학물질을 쓰는 부서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몇 명 안다”며 “그들도 자신이 무슨 물질을 쓰는지 모르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에서 오래 일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 노동자는 “생리 문제가 많으니까 불임이 될까 봐 부모님이 걱정한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2~3년 일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겨레 라이브_6월19일] 뉴스룸톡: 출연 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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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쉬면 월급 깎여”

노동자들은 몸이 아파도 쉴 수 없었다. 병가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이들은 말했다. 연차휴가를 비롯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이들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생산라인의 반장을 맡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쉬고 싶으면 5일 전에는 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프다고 말해도 다 무단결근으로 처리한다”며 “모든 직원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한번은 설사 때문에 화장실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상사에게 말했는데 회사 와서 직접 말하라고 했다. 전화로 얘기하면 허락 없이 결근한 것으로 보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 노동자는 한달에 24~25일 일하고, 일요일에 출근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2주 동안 휴일 없이 일한 적도 있지만 대체휴가는 쓸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무단결근’은 월급에 반영됐다. 노동자들은 하루 결근하면 월급이 100만동(약 5만원) 이상 깎인다고 했다. 당시 이들의 월급(초과근무수당 제외)은 600만~700만동(약 30만~35만원)이었다고 한다. 하루 결근하면 월급의 약 15%가 사라지는 셈이다. 한 노동자는 “한번은 월급이 너무 적어서 당황해 확인해보니 한 번 결근한 게 문제였다”며 “인사팀에서 ‘이유 없는 결근’으로 처리해버려서 한달 개근 수당과 하루치 월급이 모두 깎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는 “사람들은 삼성이 돈을 많이 준다고 생각하지만 잔업수당을 빼면 돈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파도 꾹 참고 회사에 나오게 된다”고 했다.

하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들은 “메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울 정도로 힘들어한다”고 토로했다. 한 노동자는 “처음에는 그냥 삼성에 취직하면 잔업을 많이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좋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개보다 못한 삶인 것 같다”고 했다.

조 디간지 아이펜 과학전문 상임고문은 “삼성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며 “삼성뿐만 아니라 삼성 제품 소비자들도 이들 45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삼성 노동자 인권 침해 우려”

아이펜 보고서는 삼성전자 노동자 인권에 대한 유엔의 논평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유엔은 지난해 3월 “유엔 인권 전문가들이 베트남 박닌과 타이응우옌 공장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또 “보고서 발표 이후 삼성이 ‘외부인에게 삼성 내 노동환경에 대해 말하면 소송을 걸겠다’고 노동자들을 협박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에 대해서도 삼성에 해명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하노이/이재연 김완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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