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1 (수)

이슈 홍콩 대규모 시위

홍콩 시위대 조직력 '모바일 메신저'에서 나왔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암호화 메시지로 연락하며 바리케이드 세우고 경찰과 대치

신분 노출 꺼려해 마스크·고글 쓰고 언론과 인터뷰 피해

연합뉴스

홍콩 입법회 인근에서 대치한 경찰과 시위대
(홍콩 AP=연합뉴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홍콩 입법회(의회)의 심의가 예정된 12일 시위 진압 경찰이 입법회 건물 인근 도로를 봉쇄한 채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지난 주말 대규모 반대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한 이날 심의는 홍콩 도심에 대규모 시위대가 집결하면서 일단 연기됐다. leekm@yna.co.kr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12일 수만 명의 홍콩시민이 홍콩 입법회 건물을 둘러싸고 벌인 시위가 조직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은 '모바일 메신저'라는 분석이 나왔다.

13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온라인으로 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한 20대 초반 이반 이프를 공공소란 공모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텔레그램의 채팅 그룹을 통해 3만 명 이상의 사람과 대화를 공유하면서 홍콩 입법회 건물 봉쇄와 인근 도로 차단을 기획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경찰이 시위 발생 후 처음으로 체포한 사람이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격렬하게 맞선 싸운 사람이 아닌, 메신저 채팅 그룹을 주도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번 시위의 특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사실 전날 시위는 오프라인에서 전면에 나서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나 활동가가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홍콩 재야단체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이 대 언론 창구 역할을 맡았지만, 전날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권전선은 현장 지휘 등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젊은 층이 주류를 이룬 전날 시위 참여자들은 모바일 메신저로 암호화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면서 놀라운 조직력과 기동력을 보여줬다.

전날 오전 8시 무렵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 주변으로 결집하기 시작하자 즉시 바리케이드를 세워 입법회 주변 주요 도로 2곳을 차단하고, 경찰과 대치 상황을 만든 것도 메신저를 통한 시위대의 실시간 의사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우산 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의 대규모 도심 점거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당시 시위대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전 세계에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렸다면, 이번에는 텔레그램, 왓츠앱, 시그널 등의 메신저가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됐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모바일 메신저로 암호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번 시위에 어떻게 참여할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시위에서 소셜미디어도 요긴하게 쓰여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 장면이나 부상한 시위 참여자 등을 사진으로 찍어 전 세계에 알렸다. 시위상황은 한국어로도 실시간 전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2014년 '우산 혁명' 때와 달라진 또 하나의 특징은 시위대가 신원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다.

우산 혁명의 지도부가 공공소란죄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을 지켜본 이들은 마스크, 고글, 헬멧 등으로 얼굴을 철저하게 가린 채 시위에 나섰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대부분 거절했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안면인식기술을 보유한 중국 당국이 시위 현장의 사진 등을 이용해 자신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시위대는 신원 확인이 가능한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나 공공 와이파이도 사용하지 않았다.

SCMP는 "전날 시위 현장을 주도한 지도부가 없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치관과 지향점이 다른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바일 메신저 등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전날 시위로 최소 2명의 시위 참여자가 경찰에 체포되고, 79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2명은 중상을 입었다.

홍콩 입법회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범죄인 인도 법안을 심의하지 않기로 했으며, 추후 일정을 의원들에게 통보하기로 했다.

홍콩 정부청사는 13일에 이어 14일에도 폐쇄되며, 공무원들은 정부청사에 접근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ssah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