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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아무도 관리 안 하는 ‘약사 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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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와 달리

면허신고제 대상에서 빠져
한국일보

올해 4월 충남 천안에 문을 연 약국. 약국 외벽을 선정적인 그림과 마약밀수 등의 문구로 도배해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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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충남 천안에서 출입문과 유리창을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선정적인 그림과 마약밀수 등의 문구로 도배한 약국이 문을 열었다.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경찰은 약사 A(40)씨를 음란물 전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대한약사회(약사회)는 해당 약사의 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키로 했다. A씨는 정신감정을 받은 후 치료감호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약사의 경우 정신질환 등 면허 결격사유가 있더라도 정부가 미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보건당국의 정기적인 면허 관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제2의 ‘문제 약국’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다.

27일 약사회 관계자는 “해당 약사의 직능 이미지 훼손과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윤리위원회를 거쳐 상임이사회에서 복지부에 약사 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의뢰하기로 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약사회로부터 관련 요청서가 접수되면 즉시 A씨의 약사 자격정지 여부에 대한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사회적 논란이 커지며 약사회가 나설 때까지 보건당국은 무기력했다. 약사 면허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다. 심지어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박탈되지 않아‘관대한 의료법’에 보호를 받는다는 비판을 받는 의사 등 의료인보다도 느슨하다. 2012년부터 의사와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의료인은 3년마다 한번씩 의무 보수교육(1년 8시간ㆍ3년 24시간)을 받고 인적 사항과 근무기관과 지역 등을 복지부에 알리는 면허신고제가 실시되고 있다. 신고하지 않을 경우 신고 시까지 자격이 정지된다. 반면 약사의 경우 국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군이지만 면허신고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1년 8시간의 약사연수교육은 있지만, 이를 받지 않아도 최대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15일 이하의 자격정지라는 행정처분에 그친다. 보수교육을 받지 않으면 면허를 신고할 수 없어 무면허 상태가 되는 의료인들과 비교하면 솜방망이 처벌이다.

현행 약사법에서는 면허를 박탈할 수 있는 결격사유로 △정신질환자 △마약ㆍ대마ㆍ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피성년후견인ㆍ피한정후견인 △의료 관련 법률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등을 열거하고는 있으나 구속 등 신병을 확보하지 않으면 정부가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손호준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약사가 스스로 정신질환이나 관련 검사를 받거나, 검ㆍ경의 수사 등이 있기 전에는 사실상 (정부가) 면허 적격 여부를 알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그나마 약사회가 소속 약사의 면허 결격 사유가 있으면 복지부 장관에게 면허취소 및 정지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한 개정 약사법이 지난해 4월부터 시행되면서 A씨가 처음으로 자격정지 처분 심판대에 오르게됐다.

정부는 앞서 2020년 도입을 목표로 약사에 대한 면허신고 의무화를 시도한 바 있다. 복지부는 2017년 2월 이런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으나 법제처와의 논의를 거쳐 보류됐다. 보수교육을 받지 않으면 면허신고를 반려할 수 있도록 한 법안 내용에 대해 법제처가 과잉 규제라는 의견을 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윤병철 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국회에 제출된 약사법 개정안과 함께 면허신고제 논의는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는 약사, 한약사가 최초로 면허를 받은 후부터 3년마다 취업상황 등 그 실태를 복지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안(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약사 면허에 대한 제한으로 번지지 않는 범위에서 기본적으로 약사 면허신고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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