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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세상사는 이야기] "운문(韻文)처럼, 첫 번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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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책 한 권을-물론 그 책만 보며 산 것이야 아니지만-사십 년을 넘게 들고 다니며 보다가 책장이 죄다 낱장으로 흩어질 때쯤 용기를 내어 우리말로 옮겼다. 낱장을 보기 어려워 새로 산 책도 그 책을 다 옮겼을 때는 헌책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벌써 오 년 전 일이다. 이제 번역의 마지막 교정을 보며 나는, 그간 아마 칠십 권은 족히 넘을 책을 냈건만 난생처음 책을 내보는 사람처럼 떨고 있다. 다시 보니 오류나 부족함이 자주 눈에 보여서다. 책이 나오고 나서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어 그야말로 온몸이 떨린다.

괴테가 60여 년을 두고 쓴 '파우스트'를 새로 번역했다. '파우스트'는 1만2111행의 지극히 정교하고 다채로운 운문 드라마다. 그간 많은 번역이 있었지만 워낙 먼 언어 사이의 거리 때문인지, 그것이 운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번역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심지어 소설로 기억하는 독자마저 있다. 그래서 번역에서 운문을 비록 재현할 수는 없어도 얼마만큼의 리듬과 시적 광채는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어렵사리 시작한 시도가 나의 새 번역이다. 언어의 리듬이 조금이라도 더 보이라고 원문과 번역을 마주 앉혀 조판을 해놓고 보니 문장구조가 전혀 다른 두 언어의 나란히 놓인 행과 행이 서로 맞아야 하는 어려움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비중 있는 작품인 줄은 알아도 좀처럼 잘 읽히지 않는 번역을 읽히게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자면 기존의 번역들을 참조도 하여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기존 번역을 일절 보지 않았다. 처음 번역처럼 번역했다. 특이한 이유에서였다. 일본에는 명역이 있다. 모리 오가이의 번역 '화우수도'로 1911년에 나왔는데 지금도 서점 판매대에 잘 보이게 놓여 있다. 부러운 일이다. 우리의 첫 번역들은 그것을 토대로 했고 독일어가 되는 후세대들도 워낙 어려운 작품인지라 기존 번역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번역이 다 비슷비슷해져버렸다. 그 모든 것이 내 눈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인 듯해서 자존심이 상했다. 일본에서의 명역과 그 존중은 부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작품 해제의 제목을 '운문처럼, 첫 번역처럼'이라고 달았다. 첫 번역도 아니고 제대로 된 운문이야 될 수 없으니 말이다. 번역 작업은 자해라고 생각될 만큼 공이 들었다. 그런데도 출간을 앞두고 이렇듯 떨고 있다.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기술은 앞만 보고 나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제어해야 할 인간의 정신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잡기도 힘겹다. 키워야 할 그 힘은, 그저 내달리려는 조급이 아니라 오히려 뒤돌아보고 둘러보는 성찰에서 탄탄히 길러지는 것 같다. 인간 정신의 산물들, 이를테면 문화나 학문은 돌아보고 둘러볼 게 많고 그럼으로써 어떤 상승이 이루어진다.

언젠가 어떤 한 사람이 평생을, 60년을 두고 공들여 쓰고 그럼에도 당대에는 이해받지 못할 줄 알았던 터라 지극정성을 쏟은 최종 원고를 봉인해 넣고 그럼에도 죽음을 한두 달 앞두고 다시 꺼내어 또 고친 글, 그것이 '파우스트'다. 봉인을 하고 다시 뜯어 정성스레 고친 부분을 오려 붙이고 있는 82세 대시인의 손길과 마음이 자주 눈앞에 떠올려진다. 독일에 잘 보관돼 있는 그 육필을 보던 때의 설렘과 내 손길의 떨림도 기억한다. 그런 원고를 아름다운 집 '괴테 실러 아카이브'를 지어 소중히 보관하고, 또 오려 붙인 쪽지까지도 고스란히 재현해내 책을 만드는 후손들도 놀랍다.

나는 아마 오래 공들인 크고 아름다운 것, 그리하여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어떤 것을 힘껏 그에 걸맞게 옮겨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1500여 쪽의 책이 내 식은땀을 묻히고 6월 초에 나온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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