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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창업 초 월급처럼 지원받은 150만원 … 1500만원 효과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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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가 4명 얘기 들어보니]

경진대회·지원금 받아서 창업

매출 자립 없으면 사업 지속 불가

사회적 기업 성장 밑천은 ‘사람’

성과 위주 아닌 효율적 지원 필요

장애인·노숙자를 고용하는 회사, 농부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식재료 기업처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등장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국내 사회적기업 1호는 2007년에 설립된 다솜이재단이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회사는 다솜이재단을 시작으로 2007년 55개에서 2018년 312개로 10년 사이 6배로 늘었다.

중앙일보

지난 9일 서울 회현동 아름다운가게 본사에서 뷰티풀 펠로우 출신 사회적 기업가 (왼쪽부터) 케이오에이 유동주 대표, 비플러스 박기범 대표, 인디씨에프 박정화 대표,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를 만났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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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사회적 기업가 성장 지원 프로그램인 '뷰티풀 펠로우' 출신으로 3~7년 넘게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 4인을 만났다. 시민 참여형 소셜 벤처 투자 플랫폼을 만든 박기범(40) 비플러스 대표,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농사펀드의 박종범(39) 대표, 누구나 광고를 제작할 수 있는 어플 ‘콘텐터’ 개발한 박정화(39) 인디씨에프 대표, 윤리적 패션을 모토로 몽골산 캐시미어 제품을 생산하는 유동주(39) 케이오에이 대표다.

박기범(40) 비플러스 대표=2016년 일반 시민이 소셜 벤처에 직접 투자하게 하는 참여형 투자 플랫폼 창업.

박종범(39) 농사펀드 대표=2015년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크라우드 펀드 출범. 펀드에 참여하면 농부가 지은 농산물로 상환 받는 방식이다.

박정화(39) 인디씨에프 대표=2012년 광고 평등을 목표로 후불제 광고 제작 사업으로 시작해 2017년 광고 제작 어플 ‘콘텐터’ 개발.

유동주(39) 케이오에이 대표=2014년 몽골에서 자연 채취한 캐시미어 제품 판매하는 브랜드 ‘르 캐시미어’, 아시아 수공예품 브랜드 ‘르 홈’ 런칭.



Q : 가장 힘든 고비라는 창업 3년차를 어떻게 버텼나.



A : 박기범=스타트업 업계에선 흔히 3년차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한다. 창업 1~2년차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업과 정부 등이 주최하는 경진대회에 나가 지원금을 받아 운영해 나가지만 3년차부턴 매출 구조를 만들어 자립해야 한다.


A : 유동주=정부나 기업은 대부분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창업 지원을 한다. 반면 해외는 사회적 기업가의 활동 자체를 지원하는 펀드나 펠로우십이 발달해있다. 창업 초기에는 사람에 대한 지원 제도가 큰 힘이 된다.


A : 박정화=지원의 효율성이 가장 중요하다. 4억원을 지원받은 적이 있는데 돈을 쓸 항목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회계 작업을 해야 했다. 이 일을 맡을 인력이 또 필요했다. 금액이 높다고 무조건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창업 초 뷰티풀 펠로우에서 매월 150만원씩 지원받았는데 이것이 1500만원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우리 회사는 무료 광고 제작에서 광고 제작 어플 개발로 비지니스 모델을 바꾸며 새롭게 IT 계열 투자사로부터 자문·투자 지원을 받았다. 위기가 올 때 변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문제 해결 능력이 길러진 것 같다.


A : 박종범=우리 회사 역시 창업 초기 소셜벤처에 투자하는 임팩트투자사의 도움이 컸다.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회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인맥·자원 제공 등 사업상의 크고 작은 문제를 함께 고민해줬다.





Q : 정부의 지원 제도는 효과적인가.

A : 박기범=정부 지원금은 신사업 프로젝트에 주로 준다. 이미 했던 사업은 지원받기 어렵다. 가시적 성과를 위한 방식으로 보이는데, 지속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또 다른 단점은 행정 업무 부담이다. 지출결의서‧승인서 등 내야 할 서류가 많아 밤마다 각종 서류 업무를 한 적이 있다. 정부 업무 특성상 필요한 일이겠지만 기업인 입장에선 일이 많아진다.


A : 유동주=그런 이유에서 업계에선 사회적기업 인증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여긴다. 케이오에이도 인증받지 않았다. 용어 문제도 생겼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기업이나 조직을 '소셜 벤처'라 한다. 이중 정부 인증을 받으면 사회적기업이라 쓸 수 있다. 인증받지 않으면 못 쓴다. 그러다 보니 소셜벤처·사회적기업·임팩트비즈니스 등이 혼용되고 있다.


A : 박기범=투자 관점에서 정부에 바라는 점은, 예산을 써서 직접 지원을 하기보단 민간 자본을 끌어와 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민간 자본에 인센티브 혜택을 주거나 소셜 벤처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 등 구현 방안은 다양하다.


중앙일보

뷰티풀펠로우 출신 사회적 기업가 대표 4인. (왼쪽부터) 케이오에이 유동주 대표, 비플러스 박기범 대표, 인디씨에프 박정화 대표,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대표 4명은 "창업 초기엔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에 투자하는 펠로우십 지원이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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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왜 소셜 벤처 중에서 상장 기업이 안 나온 걸까.

A : 박기범=미국 임팩트 투자 업계에선 이 분야의 성장을 장담하면서도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라 예측한다. 사회 인식, 소비 습관 개선이 동반되는 사회 운동(social movement)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성장 동력을 더 빨리 끌어내기 위해 사회적 기업가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고 여유를 갖고 지켜봐 주셔도 좋겠다.


A : 유동주='소셜 벤처로 시작한 상장 기업' 라는 구분을 재고해봐도 좋을 것 같다. 소셜 벤처도 경쟁력을 높여서 일반 투자를 받을 수도 있고, 윤리 경영을 강화하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모든 기업이 저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경제 형태라고 본다.




Q : 자생을 위해 사회적 기업가가 나가야 할 방향은.

A : 유동주=상품의 경쟁력 강화다. 우리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니까 소비자가 상품을 사줘야 하는 건 아니다. 소비자를 만족시킬 만큼 상품의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소셜 벤처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A : 박종범=회사의 사회적 가치를 지우고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예를 들어 윤리적 기준을 지키는 선택을 하면 비용이 늘 때가 있다. 이윤과 윤리 가치를 어느 선에서 맞출지 회의와 토론을 거듭하고 있다.


A : 박정화=사회적 가치와 품질을 모두 갖춘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후 변화, 계층 양극화 등 불편하고 불합리한 사회 현상이 있다면 이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기업을 봐주길 바란다. 자본주의에서 소비는 투표 역할을 한다. 사회적 가치를 소비로 응원해주면 어떤 지원보다 힘이 있다.


◇뷰티풀 펠로우=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가 2011년 시작한 사회적 기업가 지원 사업. 유망한 사회적 기업가를 선발해 3년간 매월 현금 170만원을 주고 연수와 멘토링 등을 진행한다. 대부분 다른 지원 사업이 프로젝트의 내용을 평가해 지원하는 것과 달리 대표 개인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직접 지원하는 게 다른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 기업가들에겐 지원 1순위로 꼽힌다.

김나현·고석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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