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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 한국은 한때 '인공지능 AI' 같은 新물결에 앞장서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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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판도를 바꿀 4차 산업 경쟁에서 한국이 낙오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헬스케어, 전기차, 빅데이터 분야에 진출한 한국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벤처)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세 분야가 한국에 불모지인 가장 큰 이유는 이해집단의 반대와 정부 규제 때문이다. 헬스케어는 '명시된 것 외에는 모두 안 된다'는 사실상 금지령이 버티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도 하고 있는 원격진료도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인 인공지능(AI)에서 한국은 이제 선두 그룹을 따라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뒤처지고 있다. 현재 AI 기술 선두에선 미국과 중국이 경합 중이다. 이 경쟁은 두 대국이 거의 사활을 걸 정도다. AI 기술은 경제는 물론이고 국가 안보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AI에 앞선 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올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책 연구기관은 AI에 연구개발비를 최우선 집행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입만 열면 'AI 기술 개발'이다. 중국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17조원을 AI에 쏟아붓고 있다. 중국은 이미 AI 분야에서 논문수·기업수·특허수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프랑스·독일 등 다른 선진국들도 국가수반이 AI 기술을 총괄하며 미국·중국을 추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통합과학기술혁신회의 위원장을 맡아 매년 AI 전문인력 25만명을 배출하겠다고 했다. 일본에선 조만간 모든 대학에서 AI 관련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태평하다. 정부는 AI 연구 자금이라며 각 대학에 '푼돈'을 나눠주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이다. 이미 AI 인재에선 이란·터키보다 뒤졌고, 세계 AI 유니콘 랭킹 100위 안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있지만 지난 1년 8개월간 AI 관련 회의는 한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서울대에선 AI 분야를 배우려는 학생은 넘쳐나는데 정원 동결과 학과 이기주의 탓에 컴퓨터공학과 정원을 15년째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하고 있다.

AI는 국경을 넘어 모든 국가 이용자의 데이터를 학습 재료로 쓰며 기술과 서비스를 무한 진화시킨다. 미국 구글과 중국 틱톡이 세계 빅데이터 시장을 휩쓸고 있는데 한국은 구경만 하고 있다. 이대로 몇 년만 더 가면 AI 후진국을 넘어 사실상 'AI 식민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가 가진 데이터는 모조리 해외에 내주면서 국내에선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묶여 기업들이 제대로 데이터를 수집·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인 클라우드 시장을 해외 기업에 거의 넘겨준 상황이다. 삼성전자·LG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 중 80% 이상이 미국 아마존과 MS의 클라우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산업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빈틈을 찾아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해온 나라다. 기초 원천 기술은 부족해도 기민한 선제 대응으로 반도체에서도 생산 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런 나라가 언제부터인지 오가는 얘기는 거의 모두 '과거사'뿐이고 미래에 무엇을 먹고 살 건지에 대한 치열함은 실종됐다. 정말 앞으로 무얼 먹고 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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