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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충무로에서] 신도시, 정말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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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10년 12월 초. 초겨울 한파 속 경기 분당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정자동 사옥 앞 주차장. LH 직원들이 초저녁부터 주차장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당시 일흔 나이의 이지송 사장이 밤을 보낼 숙소였다. 파주 운정 신도시 주민 수십 명이 즉각 토지 보상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서자 이 사장이 직접 철야 설득에 나선 것이었다. 2003년 참여정부의 '집값과의 전쟁' 끝에 파생된 파주 운정 등 2기 신도시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판교·광교를 제외하곤 파주 운정, 양주 옥정·회천, 평택 고덕, 인천 검단 등 대부분 신도시들은 차일피일 사업 일정이 미뤄졌고 막대한 보상비 부담과 금융부채에 LH를 비롯한 지자체 산하 도시공사들이 줄줄이 파산 지경에 몰렸다.

'깡통 공기업'으로 전락한 LH보다 더 비참했던 건 신도시 예정지 토지주들이었다. 미리 대체농지·사업지를 빚을 내 샀다가 보상과 사업 지연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랜드푸어'로 전락한 한 40대 토지주는 대통령 앞으로 '너무 억울하다. 내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신도시에 분양받은 사람들이 집값 급락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건 누구나 아는 스토리다. 어느 쪽도 '승자'는 없었다.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고양시 창릉 등 11만가구 신도시에 대해 예정지인 창릉 주변 일산 신도시 주민뿐 아니라 운정 주민들까지 반대에 나서고 파주시가 사업 재검토를 요청하고 나선 데는 이런 기구한 사연이 있다.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아 보이는 배경이다.

국토부를 오랫동안 취재했지만 '패자'로 변한 신도시 개발에 대해 '그때 잘못 판단했다'고 말하는 관료 한 명 보지 못했다. 정권 눈치를 보면서 일단 발표 뒤 '이번은 틀리다' 주장하기 일쑤다. "서울 20㎞ 30분 내 도심 진입 가능한 곳, 자족시설도 풍부해 그때와는 다르다."(5월 7일 신도시 발표 국토부 브리핑) 그런데 2010년 3월 31일자로 국토부 홈페이지에 아직도 있는 3차 보금자리지구 보도자료를 빼다 박았다. "서울을 30분 이내 관통하는 20㎞ 이내 거리, 주거·산업·교육·문화 시설 아우르는 자족도시."

9만가구 신도시급 광명·시흥 보금자리도 해제됐다. 정부만 믿었던 토지주들은 이번에도 '랜드푸어' 신세가 됐다.

이지송 LH 사장처럼 '텐트'라도 쳐가며 주민을 설득할 사람조차 없었다. 그냥 없었던 일이 됐다. GTX 등 교통망 '선물 대잔치'에도 3기 신도시 반대 민심이 꺼지지 않는 건 이렇듯 정치·관료에 속는 데 신물 났기 때문이다.

결국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다. 어설픈 해명과 대책을 내놨다간 '역풍'만 불 게 뻔하다. 김 장관이 담당 공무원들을 불러놓고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하며 꼭 한번 물어본 뒤 기자회견장에 섰으면 한다. '신도시는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 정말 이 방법이 최선인가.'

[이지용 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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