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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규제 OUT](15)2년째 표류하는 주세법 개정안-수입맥주만 유리한 세제…정부는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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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고가에 세금을 붙이는 현행 종가세 체제에서는 어떤 기업도 좋은 재료를 사용해 고급술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종량세로 개편하면 한국 술의 품질 향상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정부는) 신속하고 명확하게 주세법 개정을 추진해달라.” (조태권 화요 대표)

지난해부터 추진했던 주세법 개정이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결국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세법 개정이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수입 맥주와 세금체계 역차별을 호소했던 국내 맥주업계 반발이 거세다.

현행 종가세 방식에서 종량세(잠깐용어 참조)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세법 개편 논의는 지난해부터 수면 위로 본격 올라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여론 수렴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수차례나 말을 바꿨다.

지난해 7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 주종의 조세 형평성 등을 고려해 (주세법 개정을) 올해로 연기하겠다며 전면 보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내년 3월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약속했지만 올해 3월이 되자 다시 4월 말에서 5월 초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5월 초가 되면서 기재부는 기한을 두지 않고 주세법 개정을 연기한다고 또 입장을 번복했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국산 맥주를 억지로 보호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외국산과 차별만 없애달라고 하는데 이것조차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매경이코노미

주세법 개정안을 놓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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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법 무엇이 문제?

▷세금 형성 과정이 달라

주세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는 현행 주류세 구조가 수입 맥주에 유리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술의 판매 가격에는 주세와 교육세, 부가세 등 각종 세금이 포함된다. 전통주인 막걸리에는 5%, 와인은 30% 주세가 붙으며 맥주와 위스키 주세는 72%다. 맥주 세율이 높은 이유는 1970년대 세율 제정 당시 맥주가 한국에서 고급 주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과세를 부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세율을 높게 책정했다.

하지만 같은 맥주라도 수입 맥주와 국산 맥주 세금에는 차이가 있다. 주세법상 국산 맥주는 ‘제조원가’에 세금이 붙는다. 주정, 재료, 병, 포장재 등 원료나 인건비, 마케팅과 광고비, 임대료 등이 모두 포함된다. 개성 있는 맥주맛을 위해 다양한 재료를 써야 하는 수제맥주 업체들이 원료에 마음껏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다. 재료비나 마케팅 비용, 인건비 등이 오르면 세금도 같이 오른다.

예를 들어 재료비에 판매비, 이윤까지 합친 국산 맥주 출고 가격을 1000원이라고 하자. 주세는 720원, 교육세는 216원이 붙어 1936원이다. 부가가치세 10%를 포함하면 최종 소비자가격은 2130원이다. 여기에 유통 마진까지 감안해 세금이 책정된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 가격이 높기 때문에 세금도 덩달아 세다.

반면 수입 맥주의 과세 기준은 ‘수입원가’다. 수입 업체에서 신고한 수입원가에 세율을 곱해 세금이 매겨진다. 수입업자가 신고한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신고 가격을 낮게 부를수록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실제 수입업자가 얼마에 사왔는지 알기도 어려워 정확히 세금을 냈는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주세법이 수입 맥주에 유리한 구조로 형성됐다 보니 수입 맥주 가격은 국산 맥주보다 훨씬 저렴하다. 국내 맥주 시장 규모는 약 3조~4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수입 맥주 시장점유율은 약 10%에 불과하지만 점점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미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보다 훨씬 잘 팔린다.

물론 국산과 외국산을 따지지 않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맥주를 즐길 수 있다면 소비자 관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주세법은 국내 맥주업계를 후퇴하게 만든다는 것이 맥주업계 주장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주세법 개정에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차일피일 미뤄지는 주세법 개정안

▷물가 상승 우려에 주류업계 동상이몽

지금까지 국내 주세법을 이루는 근간은 종가세였다. 술의 원가에 따라 세금을 차등 배분하는 형식이다. 반면 외국에서는 대부분 종량세를 실시한다. 종량세는 재료나 제조법과 상관없이 술의 용량(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이 적용된다.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주세법 구조가 바뀌면 중소 수제맥주 업체도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뿐더러 맥주의 맛도 다양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 생각이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주세 개편은 50여년간 유지된 종가세를 개편하는 것”이라며 “술은 국민 실생활과 밀접해 소비자 후생과 주류산업의 경쟁력, 통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빠짐없이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주류업계 내에서도 입장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맥주나 고가 전통주 업계는 주세법 개정에 전반적으로 찬성한다. 반면 소주업체 중에서는 가격(세금) 인상이 없다는 가정하에 종량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바꿔 말하면 세금 인상이 단행되는 결과를 가져오면 반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주세법 개정안의 조건이 너무 복잡하고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소주와 맥주 가격 인상이 없고 세수 증가가 없으며 소주와 전통주, 막걸리 등 다양한 업계가 모두 만족하는 방법”을 주세법 개정안의 조건으로 앞세운다. 주류업계 모두가 만족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최근 가격이 오른 소주가 문제로 떠오른다. 지금은 소주가 낮은 제조원가 덕분에 세금이 적게 부과된다. 하지만 기준을 바꿔 알코올 도수에 맞춰 세금이 부과되면 소주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주세법 개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기재부는 “주류업계와 몇 차례 간담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는데 맥주업계는 대체적으로 종량제에 찬성했지만 일부 업체는 이견이 있다”며 “소주와 약주, 청주, 증류주, 과실주는 (종량세 전환 시) 기존 유통이나 판매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오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가격 인상이 없는 범위 내에서 주세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기존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지금과 같은 주세법 체제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곳은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다. 몰트라 불리는 맥주용 보리나 홉, 효모 등 맥주 필수 원료를 전량 수입한다. 재료값도 비싼 편이다. 수제맥주를 만들 때는 원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 재료 비용이 더 비싸진다. 제조원가에 각종 세금을 합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주세법 개정이 미뤄지는 것에 대해 정부가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맥주 등 일부 주종에서만 먼저 주세법 개정을 시도했어야 했는데 정부가 전 주종으로 주세법 개정을 확대하겠다고 무리수를 던지면서 어떤 결론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는 주장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현재 주세법은 ‘기울어진 운동장’ ”이라며 “맥주도 결국 산업인데 지금처럼 생산량을 줄이고 수입 위주로 시장이 돌아가면 산업이 퇴보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규제가 산업 발전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주종별로 업계 입장이 다 다른데 모두가 만족할 만한 법체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종가세 요소를 더 많이 적용하고 이후 종량세 비중을 높인 뒤 최종적으로는 종가세를 제외하고 종량세 방식으로만 운영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다. 이것조차 부담스럽다면 일부 주종에 대한 우선 적용 등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의 생각이다.

잠깐용어 *종가세와 종량세 종가세는 제조원가나 수입가 등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반면 종량세는 주류 용량이나 알코올 농도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마진을 포함한 제조원가를 세금 부과 기준으로 하는 국내 맥주와 달리 수입 맥주는 업체가 임의대로 정할 수 있는 신고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하고 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9호 (2019.05.22~2019.05.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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