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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별난 승부사' 노무현···2002년 7월 화장실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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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선]

오는 23일 어느덧 서거 10주기

바뀐 듯 안 바뀐 정치 현실 때문

잊히지 않는 2002년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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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민석 논설위원


오는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다. 한 방송사에서 서거 10주기 프로그램을 위해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노 전 대통령을 잘 모른다. 단지 2002년 한 해 동안 그를 취재했던 여러 기자 중의 한 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참에 옛 기억을 소환해 보기로 한 것은 측근·참모들의 눈이 아닌 평범한 시선으로 노 전 대통령을 더듬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일단 어려웠던 시절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2002년이 파란만장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1. 2002년 7월.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후반 불거진 각종 게이트 탓이 컸다. 야당은 총공세를 폈다. 이에 노 후보는 7월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기자회견 준비는 보안 속에 진행했지만 나는 노 후보 측의 기류를 읽고, 발표 전 단독기사를 썼다. ‘노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김 대통령에게 개각을 건의하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의 회담을 제의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틀린 부분도 많았지만, 얼개는 대충 맞았다. 정국 승부수가 신문에 미리 나와버렸으니 회견이 김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 3사가 기자회견 생중계를 보이콧하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했다. 나로선 할 일을 한 것이었지만, 노 후보 측의 손해가 작지 않았다.

바로 이날 노무현 후보와 딱 마주쳤다. 그것도 단둘이. 다른 곳도 아닌 화장실에서였다. 노 후보와 눈이 마주치자 엉겁결에 “후보님, 죄송합니다”란 말이 나왔다. 그때 노 후보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아니, 강 기자가 왜 사과를 합니까”라고 되물었다. “강 기자가 ‘반칙’을 했나요? 정당하게 취재 경쟁을 해서 쓴 거 아니에요? 그걸 문제 삼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라면서. 그랬다, 그는.

손해를 봐도 반칙이 아니면 그는 개의치 않았다. 손해를 안 봤어도 기사가 반칙이었다면 반응은 달라졌을 것이다.

#2. 2002년 8월. 노 후보의 지지율이 10%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당내 반대파는 온갖 창의적 방법으로 노 후보를 흔들었다. 어떤 중진은 “노 후보는 지금까지 설렁탕 한 그릇 안 샀다”며 사퇴 운운했다. (당시 노 후보가 의원들에게 자장면 사는 건 여러 번 봤다. 노 후보는 자장면 말고 설렁탕을 샀어야 했나보다.)

그 무렵, 8월 하순, 노 후보는 각 언론사 담당 기자들을 서울 혜화동 자택으로 초대했다. 일종의 자택 개방 행사였다. 거기서 노 후보의 조금은 외로운 모습을 느꼈다. 대선후보가 그런 이벤트를 하면, 부르지 않아도 눈도장 찍으러 오는 의원들이 몇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현역의원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만찬 시작 후 누군가 도착했다. 지금 국무총리인 이낙연 의원(당시 대변인)이었다. 노 후보가 현관까지 나가서 마중하면서 “대변인이 오셨네요. 내가 실세 맞죠? 실세 맞죠?”라고 연거푸 묻던 기억이 생생하다. 반가워했다기보단 기뻐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그 당이 후보 대접을 안 해줬으면. 사실 선출된 후보를, 다른 아무런 하자도 없는데 지지율이 낮다고 흔들어대는 것(요즘도 종종 볼 수 있다)은 반칙이다. 하지만 그는 반칙에 밀려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것 같다.

이날 노 후보가 한 말 중 기억나는 것이 “역사가 한 개인에 의해 바뀌는 건 아니더라”는 것이었다. 개인기보다 국정 시스템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반대파가 들었다면 “당신이 대통령이 되기나 하겠어?”라고 비웃었겠지만, 그는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반칙에 굴복할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자택개방 행사후 넉달뒤인 2002년 12월. 노 후보가 기어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승부에서 이기면서였다. 노 후보를 흔들던 사람들의 코가 납짝해졌다. 그런데, 반전의 반전이 또 일어났다.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 드라마처럼 대선일(12월 19일) 하루 전 발생한 초대형 악재였다. 12월 18일 밤. 민주당 핵심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여기까진 다 아는 얘기다. 회의실 문을 걸어잠갔지만 요즘 말로 다들 멘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노 후보만 마치 외계에서 온 듯한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훗날 복수의 관계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정몽준의 지지철회를 받아들이는 노 후보의 반응은 “오히려 더 잘 된 것 아니냐”였다고 한다. 그 순간, 어떻게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 생각해보면 반칙(지지 철회)에 굴복할 수 없다고 믿은 건 아니었을까 한다.

알다시피 반전의 반전의 반전이 또 한번 일어났다. 결과는 노 후보의 말대로였다. 지지층의 대결집으로 노 후보는 ‘정몽준의 지지 철회’에도 불구, 승리를 거머쥐면서 아무런 부채 없이 자산(정몽준에게로 빠졌던 지지)만 승계할 수 있었다.

그 해 지켜본 노 후보는 반칙과 싸우던 ‘승부사’였다. 승부사치곤 지는 일이 더 많아서 승률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승부처에선 꼭 이긴, 참으로 별난 승부사였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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