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소년범은 나쁜 아이 아닌 아픈 아이 공감해주고 믿음을 주니 변화 보여”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안양소년원 심리치유 봉사 2인 / 어른·사회 잘못서 비롯된 범죄 다수 / 방어기제 강해 속마음 잘 열지 않아 / 3년째 영화 보며 대화·글짓기 수업 / “형식적인 일선 현장 정책 아쉬워”

경기도 안양소년원에서 소년범 대상으로 3년째 심리치유 활동 중인 ‘따뜻한 손’이 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거나, 글짓기로 그들 마음을 어루만진다. 심리치유센터 ‘더공감 마음학교’의 박상미 대표와 상담 봉사자 김소욱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뜻이 같은 몇몇 봉사자와 함께 소년범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거듭나게 돕는다.

두 사람은 소년범을 ‘나쁜 아이’가 아닌 ‘아픈 아이’로 봐주길 바란다. 어른과 사회 잘못에서 비롯한 비극이 많다는 걸 알아서다. ‘나중에 좋은 어른으로 만나자’며 새끼손가락 건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세계일보

안양소년원 아이들과 파티하던 날. 박상미 더공감 마음학교 대표는 자신의 저서를 아이들에게 선물한 뒤 “우리가 너희들을 끝까지 믿어주는 어른이 되겠다”고 응원했다. 박상미 대표 제공


◆박상미 대표 “세상에 ‘좋은 어른’이 많음을 알리고 싶어요”

가정과 학교에서 멸시당한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좋은 어른’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원조교제 아저씨’랍니다. 돈 주겠다는 약속도 지키고, 편의점 절도사건 합의금까지 대신 갚아줬다는 이유죠. 놀라서 “그럼 부모님께는 연락 안 했어?”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내가 미쳤다고 그래요?”라고 되묻습니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을 소년원 강사로 들여보낸 적이 있는데, “못생겼다” 등 엄청난 조롱이 쏟아졌죠. 알고 보니 아이들의 호감 표시였대요. 그 뒤로 학생이 소년원에 오지 않으니 “왜 그 선생님 안 오세요?”라고 묻더군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원조교제 아저씨가 아니어도 너희가 만났던 선생님처럼 세상에는 좋은 어른이 많단다. 그런 어른을 만나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부터 당장 변해야 해”라고요.

2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수업이 최근 있었어요.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한 아이의 말을 듣고는 꿈을 이룬 20년 뒤의 너를 생각하라고 했죠. 멋진 통역사가 되어서 좋은 차를 타고, 소년원에 와서 앞에 앉은 아이들에게 “나도 예전에 여기 있었어. 너희들도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하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하니 들떴는지 난리가 났어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옮기라 하니 술술 쓰더군요. 저희가 하는 ‘문학치유 수업’의 하나입니다.

뜻이 같은 분을 모아 전국 소년원으로 발길을 넓히고 싶습니다. 수많은 아이 중 하나라도 올바른 사람으로 크게 도울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어요. 소년원 나간 아이들이 언젠가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 아픔 달래려 노력한 우리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죠. 하지만 교화를 돕고픈 마음과 달리 대다수 일선 현장의 정책은 다소 형식적인 것 같아 한계를 느끼곤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희를 받아준 안양소년원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소욱 봉사자 “‘때려야 해요’ 표현 인정하니 아이가 놀랐어요”

아들이 소년원에 있다는 재소자 사연을 경기도 여주의 소망교도소에서 접하곤 지금에 이르렀네요. 사회에 나가도 보호자를 만나지 못할 소년원 학생의 아픔을 상담으로 달래주자는 생각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방어기제가 강합니다. 소년원에 왜 왔는지 좀처럼 말하지 않아요. 거친 표현도 서슴지 않죠. 최근에는 동화책을 읽다가 “주인공을 때려야 한다”고 말한 아이가 있었는데, 보통 어른이라면 “그러지 말라”며 혼내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답해줬더니 순간 당황하더라고요. 부모의 거부와 사회의 무시로 적개심이 가득했던 탓에 나온 표현이었는데, 누군가 자기 말을 인정하니 놀랐던 것 같습니다.

양친과 조모에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있는 ‘완벽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마저 소년원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아이는 패싸움에 휘말렸다면서, 운이 없어서 소년원에 왔다고 말했죠. 도대체 어떤 요인이 아이를 폭력적으로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종종 “선생님한테 엄마 냄새가 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전 많이 부족합니다. “좋은 어른으로 자라야 해”라며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면서도 어른들의 잘못이 그들을 소년원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