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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고스펙’ 퇴임교수가 일본어 과외를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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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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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넷] “일본 유학 12년, 대학 전임교수 28년, 대학 학과장, 박사학위 3개,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 문제출제위원….” ‘과외선생님 스펙이 뭔가 이상하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 한 장. 흔히 볼 수 있는 과외전단지다. 일본어 과외다. 월 25만원. 스펙이 이상하다는 건 과외교사를 하기엔 경력이 너무 화려해서다. 한 누리꾼은 이렇게 비유했다. “히딩크가 유치원생에게 축구를 일대 일로 가르치겠다고 하는 격.”

사연이 뭘까. 찾아보니 이 ‘전단지’는 이전에도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2017년 3월쯤이다. 그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37권을 냈다는 책 제목을 통해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주인공은 정인문 전 동아대 교수(66)다. 그의 일성. “인터넷에 그런 게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인터넷은 잘하지 못해서 본 적은 없고요.” 경력은 진짜? “사실 전단에 제 스펙을 전부 다 쓴 건 아니에요. 한 3분의 1이나 되나….”

스펙에 비해 과외비가 너무 싸다. “사기 아니냐”는 문의도 받았다고 한다. “이 불경기에 비싸게 받으면 얼마나 배우러 오겠습니까.” 오히려 사정을 말하며 더 깎아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경우 대부분 들어준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년퇴임 후 심심풀이’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엄연한 생계활동이다. “저도 뭐 나이가 있고 이렇게라도 안하면 감각을 잊어버릴 것 같고,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석·박사 논문 지도를 하려고 했는데 지원자가 없었다는 것. 일본어가 아니라 문학 전공자이지만 유학을 12년간 했으니 일본어가 사람 모으는 데는 가장 나아 선택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때는 월 13명까지 가르쳤지만 무슨 이유인지 수강생이 줄어들어 현재는 4명만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와 통화하기 전날(5월 14일) 경남 창원 시내를 돌면서 과외전단지를 붙이고 온 참이라고 말했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학문적 내공이 간단치 않다. 연구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당연히 생각이 있죠. 개인적으로 일본의 근대문학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전체 작품을 연구사적으로 되짚는 일을 해보고 싶고, 또 문학대사전 같은 것도 만들고 싶긴 한데, 학교도 그만두고 먹고사는 데 신경쓰다 보니 지금은 손을 못대고 있죠.”

인생사, 고단한 일 투성이다. 그래도 꿈은 포기하지 마시길.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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