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전주연씨는 커피를 '에너지'라고 했다. 누r군가의 삶에 에너지를 주는 일, 그녀가 바리스타로 사는 이유였다. 20190515/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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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
현재 그녀는 세계적인 바리스타이다.
지난 2019년 4월 15일부터 그리되었다.
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에서 우승한 게다.
이것으로 인해 그녀는 전 세계 커피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네티즌은 그녀를 '전세이셔널'이라고도 칭한다.
이른바 벼락스타가 된 게다.
1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녀의 12년이 궁금했다.
그래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2019년 4월 15일(한국 시각),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 결승에서 전주연씨가 심사위원을 앞에두고 테이블에 앉아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COFFEE TV 화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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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나러 부산으로 가기 전 WBC 결승전 영상을 살펴봤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서 있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그녀가 아주 유쾌하게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심사위원 여러분!
커피를 마시기에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농부, 로스터 및 바리스타가 서로 협력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 고품질의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커피에서 탄수화물이 맛의 균형을 잡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019년 4월 15일(한국시각),미국 보스턴에서 개최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 결승에서 전주연씨가 심사위원을 테이블에 앉게한 후 설명을 하고 있다. 사진/ COFFEE TV 화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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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녀가 테이블 위에서 내려와 심사위원들을 테이블 위에 앉게 했다.
“이제 여기에 편하게 앉으십시오.
나는 우리가 모두 친근감을 느끼고,
친구들과 하는 것처럼 나의 커피를 즐기기 바랍니다.
서로 인사하십시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영어로 말을 하였기에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5분 동안 12잔의 커피를 만들며,
커피의 철학을 설명하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는 점이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 결승에서 우승한 전주연씨가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사진 /전주연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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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그녀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당당히 가운데선 그녀,
대한민국 최초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가 된 게다.
부산 금정구 동래온천장역 인근에 있는 모모스커피. 왼쪽이 출입구, 오른쪽이 테이크아웃 공간이다. 전주연 바리스타는 2007년 오른쪽의 테이크 아웃 공간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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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서 전철을 탔다.
동래 온천장 역에 내리니 바로 인근에 모모스커피가 있다.
그녀의 일터다.
건물 외관부터 독특했다.
오른쪽은 테이크 아웃 공간,
왼쪽이 출입구이다.
모모스커피의 각 공간은 느낌이 다르다.워낙 작게 시작하여, 벌어서 공간 마련하고,벌어서 인테리어 하다보니 각각의 공간이 느낌이 다르다는 게 전씨의 설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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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과 마찬가지로 안도 독특했다.
모두 2층, 층마다 각각 다른 분위기였다.
게다가 별채도 있다.
그런데 그 공간마다 사람이 거의 다 찼다.
평일 오후 2시인데도 그랬다.
민얼굴에 검은 티셔츠 차림의 전주연씨, 표정과 걸음 걸이에도 에너지가 넘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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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적잖이 놀랐다.
분명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언질을 주었건만
화장을 아예 안 한 채였다.
대체로 인터뷰를 하면 평상시보다 과하게 꾸미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녀는 민얼굴이었다.
게다가 햇볕에 그을린 듯 피부가 까맸다.
Q : “얼굴색이 커피색과 비슷합니다.
시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간혹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직장인데 제가 이렇게 입고 출근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요.”
검은색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런 그녀의 말과 행동으로 보건대 커피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인터뷰 후 사진촬영 시 결국 그녀는 화장하지 않았다.)
전주연씨는 아침 첫 커피를 '하루의 삶을 준비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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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커피 때문에 만난 것이니 커피에 관한 질문부터 했다.
Q : “하루 중 첫 커피는 언제 마십니까?”
Q : “빈속에 아침부터 마십니까?”
Q : “테스트도 해야 하니 이래저래 온종일 많이 마시겠네요”
맛과 향을 느낄 만큼 삼키고 나머지는 뱉어냅니다.”
커피를 테스트하는 전주연씨, 항상 웃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왼손에 든 컵에 커피를 뱉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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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테스트하는 장면을 봤다.
뜨거울 때, 미지근할 때, 식었을 때, 한 숟갈씩 머금고 뱉는다.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Q : “식은 커피는 왜 마십니까?
Q : “맛있는 커피란 어떤 커피입니까?”
제 어머니는 신맛 때문에 제가 만든 커피를 못 마십니다.”
Q : “그렇다면 바리스타가 내어 준 커피가 쓰다며 물을 더 달라고 해도 실례가 아닌가요?”
모모스커피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전주연씨, 이렇게 내려 서브한 커피가 어떤이에게는 에너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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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WBC에서도 창작 메뉴에 커피의 단맛을 주제로 잡으셨다면서요.”
실제로 한 컵이 가지고 있는 탄수화물은 굉장히 소량입니다.
그 손실된 다당류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저희 모모스커피와 부경대 식품공학과랑 산학협력이 맺어져 있습니다.
그쪽의 도움으로 버려진 커피 찌꺼기에 잔존해 있는
탄수화물을 추출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걸 WBC에서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Q :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까?”
사실 아쉬웠다.
내심 그 커피를 만드는 장면을 찍고 싶었고 맛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재료가 없었다.
그 재료란 것이 흔히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고압, 고온의 물로 추출하여야 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Q : “심사위원들 반응은 어땠나요?”
친환경적이겠다는 심사위원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2007년 아르바이트를 했던 공간이다. 모모스커피 또한 이 작은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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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커피는 언제부터 접했습니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부 임상심리전공이었습니다.
원래 꿈이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
현장실습을 해보니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때 시내에서 우연히 여기 대표님을 만났는데 뭐하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여기서 아르바이트할 때,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출근했습니다.”
Q : “부모님과 교수님이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커피집에서 일한다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부모님과 교수님이 제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걸 엄청 반대하셨습니다.”
로스팅 된 커피의 향을 맡고 있는 전주연씨, 한때 향을 표현하는 모든 단어를 찾아보기도 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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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커피 공부는 여기 와서 시작했나요?”
당시엔 식품을 온라인으로 사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온라인 접근이 너무 일렀던 거죠.
그래서 자주 바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Q : “커피를 가르쳐 준 사람이 대표였습니까?”
매주 다른 주제를 정해 각자 발표를 했습니다.
커피에도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로스팅 등 수많은 변수가 있잖아요.
핸드 드립 혹은 기계 추출도 있고 하니
파트로 나누어서 공부했어요.
당시 대표님이 더 큰 커피 시장을 봐야겠다며 미국으로 갔습니다.
다녀와서 미국엔 스페셜티 시장이라는 게 있으며,
심지어 커피 맛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당시 찍어 온 영상과 사진 중 하나가 WBC 영상이었습니다.”
Q : “ 그 영상을 보며 WBC에 대한 꿈이 생긴 겁니까?”
2009년 국가대표로 WBC에 참가했던 이종훈 바리스타에게서 배웠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며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Q : “비용이 만만치 않았겠네요”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마시는 사람이 상생해야 지속가능한 스페셜티가 나오게 된다는 게 바리스타로서 그녀의 철학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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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매년 WBC에 도전하신 겁니까?”
거의 10년 동안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2014, 2015년엔 계속 2~3등 했습니다.
잡힐 듯하며 안 잡히는 거죠.
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1등을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문제를 알기 위해 2016년엔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습니다.
심사위원이 되면 그다음 해에 선수로 참가 못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심사위원을 하면서 정말 배운 게 많아요.
선수가 아무리 잘나고 대단한 게 많아도 결국 심사위원도 사람이더라고요.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무조건 일방적으로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대화는 없지만, 이 사이에서 미묘한 케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잘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일 년을 쉬고 2018년에 1등을 해서 처음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딱 9년 만에 이 무대에 1등으로 서게 된 겁니다.”
WBC에 출전하기위한 국가대표란 타이틀, 칠전팔기에 9년만에 따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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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녀를 두고 벼락스타라고 한다.
지나온 과정을 두고 보면 지금의 모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칠전팔기'였다.
Q : “2018년 WBC의 성적은 어땠나요?”
친구들 거의 안 만나고, 가족과 보낸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하나에만 몰두했어요.
결국 부담감과 책임감에 너무 긴장했습니다.
너무 기본적인 동작들을 안 해버리고 통으로 날려버렸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54초 타임 오버였습니다.
1초당 1점 감점을 받아 14등 했습니다.
진짜 많이 울었습니다.”
Q : “감점이 없었다면 정말 좋은 성적이었겠네요.”
저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배려해주고 희생해줬는데….”
Q : “다른 사람의 배려와 희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연습도 혼자 연습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팀들이 밤에도 남아서 조언도 해주며 도와줬습니다.
저희 대표님도 저 때문에 많은 돈을 쓰셔야 했고….”
모모스커피엔 안식월, 유급휴가, 주 5일, 연월차, 직원식당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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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모모스커피에 하루 손님이 1300명 정도라면서요”
복지가 되게 좋아요.
안식월, 유급휴가, 주5일, 연월차, 직원 식당도 있습니다.
해외 연수도 있고요.
기업의 교과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Q : “언제부터 이리 성장했습니까?”
손님이 오든 안 오든, 좋은 재료를 계속 소개하면 결국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무료 클래스를 열어 우리가 가지고 오는 원료가 어떤지 소개했고요.
커피 클래스가 아주 큰 역할을 해줬다고 저희끼리 이야기해요.”
Q : “앞으로 꿈은 무엇입니까?”
부산에서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부심이 있어요
‘촌부심’ 이런 것처럼요.”
팔뚝엔 새 타투가 새겨져있다. 새처럼 자유롭게 해외를 다니며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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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곧 또 해외로 나가신다면서요”
커피 수입하는 농장의 토양, 작황, 생산량을 체크하고요.
한국으로 샘플 보내서 우리가 미리 먹어볼 수 있게도 하고요.
사실 얼굴 보고,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해야지 정도 쌓이고,
그래야 좋은 커피를 보내주고 그러죠.
그래서 신경 쓰는 농장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합니다."
Q : “앞으로도 해외에서 활동을 많이 하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래서 계속 제가 부산을 언급하고, 한국을 언급하는 하는 겁니다.
한국이 커져야 이 산업에 일하는 바리스타,
모두가 행복할 수 있잖아요.”
WBC 우승 트로피를 머리에 인 전주연씨, 상을 받고 커보이게 하려고 이런 포즈를 취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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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 참, 대회 상금은 얼마나 되죠?”
해외에서 기계를 개발하는 업체와 협업할 수도 있고,
커피 컵 만드는 데서 제안이 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제가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이 소비국보다는 생산국입니다.
생산하는 농가랑 접촉하려고 합니다.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 마시는 사람이 상생해야
지속가능한 스페셜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니까요.”
Q : “사실 전주연씨의 우승 때문에 '폴 바셋'이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2003년 우승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따르는 일, 그녀에겐 에너지를 더하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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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전주연씨에게 있어 커피란 어떤 의미입니까?”
Q : “바리스타 꿈꾸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커피를 만들어 서브하는 거잖아요.
이게 맞는다면 커피를 공부해볼 만합니다.
저는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커피 매장에 올 때 막 화내면서 오시지는 않잖아요.
다 기분 좋은 상태로 옵니다.
그 상태에 제가 커피로 더 기분 좋게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Q : “결국 그런 일이 에너지라는 거죠?”
다음 주에 중요한 재판이 있다면서요.”
Q : “평상시 꽤 친분이 있었습니까?”
Q : “그런데 공짜로 주신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터에 갑자기 커피를 받아든 손님의 손,
바르르 떨고 있었다.
게다가 이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 순간 그녀가 서브한 커피,
분명 커피에다가 삶의 에너지를 더한 것이었다.
글·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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