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방문을 마치고 백악관에 귀환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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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 대공황때 ‘관세 폭탄’은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트럼프는 중국에 징벌적 관세 25%안을 내놓았다.
밀고 당기더니 연말에 가서야 ‘유예’를 이끌어냈다. 세계는 안도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미국은 내달부터 관세유예 철회를 발표했다.
‘관세 폭탄’은 많은 경우 전쟁으로 귀결됐다. 1929년 10월24일 뉴욕 증시가 대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되자 미국의 내수기반은 붕괴됐다. 각국은 빈사상태에 빠진 자국 산업을 부축하기 위해 수입품 규제에 눈을 돌렸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원 윌리스 할리가 이듬해 내놓은 스무트-할리법은 보호무역의 결정판이었다. 2만여개의 과세 대상 수입품에 평균 59%의 관세를 매겼다. 캐나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통상국가들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1929~1932년 세계무역은 63% 감소했다. 흉흉해진 민심에 파시즘과 나치즘이 파고들었다. 교역 문제가 감정적 민족주의로 번지면서 세계는 분열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지적재산권 침탈을 빌미로 500억달러 상당의 중국 수입품에 25%의 징벌적 관세를 매김으로써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중국이 석달 뒤 600억달러 상당의 미국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은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제품에 10% 관세를 추가하면서 연말까지 25%로 인상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12월1일 미국이 관세 인상 방침을 잠정 유예하면서 세계는 안도했다. 백악관은 “미·중은 중국에 의한 강요된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 보호, 비관세 장벽, 사이버 공간에서의 기술 절취 등에 대한 구조적인 변화에 대해 즉각 협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타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동부시각으로 지난 10일 0시1분부터 지난해 연말 유예했던 관세 인상조치를 기어코 단행하면서 협상은 결렬됐다. 미국은 2000억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 5700여개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렸다. 중국이 오는 6월1일부터 600억달러의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최고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미국은 3250억달러 상당의 나머지 중국 제품에도 25%의 관세를 곧 매기겠다고 되받았다. 지난해 미·중 교역액은 6600억달러였다. 미국은 1200억달러를 수출하고, 5400억달러를 수입해 419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양측의 위협이 현실화한다면 사실상 미·중 간 모든 교역품이 고율관세의 대상이 된다.
지난 15일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는 미국 뉴욕항 스태튼섬의 컨테이너 터미널에서 대형 크레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뉴욕/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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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3.1%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산 제품의 관세율은 최악의 경우 27.8%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남은 협상 시간은 불과 2~3주···
트럼프의 전략일 수 있다.
긴장을 고조시키고 SNS를 통해 ‘제로 관세’도 거론했다.
한 연구소는 이를 ‘미친 아저씨 전략’이라고 했다.
미·중이 타협을 시도할 시간은 2~3주 정도밖에 없다. 미국의 인상관세는 ‘10일 0시1분’ 이후 미국으로 출발한 수출화물에 부과된다. 그전에 떠난 컨테이너선들의 항해 시간만큼 유예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 간 기싸움의 향배는 오리무중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전시(戰時)에는 최악의 상황부터 가정하고 출발하는 게 안전하다. 워싱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원(PIIE)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PIIE의 채드 본 연구원과 에바 장 연구원은 트럼프가 약속한 추가 관세 폭탄까지 감안한다면,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스무트-할리법의 수준에 근접한다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하기 전까지 중국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은 3.1%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현재 트럼프의 대중 관세 폭탄은 3종 세트였다. 500억달러(25%), 2000억달러(10%)에 더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태양광 패널·세탁기에도 관세가 추가됐다. 그 결과 대중국 평균 관세율은 4배가 뛰어 12.4%에 달했다. 지난 10일 인상 방침이 전부 적용된다면 18.3%로 오르며, 트럼프가 “곧(shortly) 발표하겠다”고 다짐한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27.8%가 된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이 아니었다면 38.6%이다.
스무트-할리법은 모든 국가를 상대로 적용됐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중국만을 겨냥한다.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들에 대한 평균 관세율은 3~4%선이다. 중국이 ‘인민의 전쟁’을 선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는 중국 SNS에서 국민적 반미 감정으로 번지고 있다.
트럼프 스타일의 하나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할수록 태연하게 함박웃음을 보이면서 트위터 메시지를 날리는 것이다. 그는 지난 14일 “적절한 때가 되면, 우리는 중국과 딜(타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어에 가깝다. “중국과 사소한 다툼이 있지만 딜은 꼭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시진핑 주석에 대한 나의 존경과 우정은 최상”이라는 말도 내놓았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여러번 말했듯이 (무역분쟁의 타결안은) 미국에 엄청난 딜이어야만 하며, 그렇지 않다면 말이 안된다”고 단언했다. 전날엔 중국이 ‘제로 관세’를 만끽할 방법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 비관세국가의 제품을 사거나, 미국 내 생산품을 산다면 관세를 완전하게 피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제로 관세다. 관세가 부과된 (외국)기업들은 중국을 떠나 베트남이나 아시아 국가로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이 이토록 절실하게 딜을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캇 케네디 국장은 트럼프의 협상전략을 미국의 상징인 ‘엉클 샘’과 ‘광인 전략’을 합해 ‘미친 아저씨 전략(Crazy Uncle Strategy)’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의 광인전략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어디까지가 순간적인 불평이고, 진짜 위협인지 분간이 안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기후변화협정·이란 핵합의(JCPOA) 탈퇴에선 설마가 사실이 됐다. 2017년 북한의 ‘완전한 파괴’ 위협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실제로 군사행동을 심각하게 검토했었음이 후일 드러났다. 불확실성의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그릴 것인가, 굴복을 거부할 것인가. 상대는 양자 택일의 딜레마에 빠진다. 올해 미·중 무역분쟁이 심상치 않은 것은 중국이 적어도 현재까지 후자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을 깨더라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번 협상에서 의표를 찔린 것은 미국이었다. 중국이 국내법에 억지 기술이전과 지적재산권 보호, 비관세 장벽, 사이버 공간에서의 기술절취 금지 등 4가지를 명시토록 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것으로 오인한 탓이다. 중국 지도부는 마지막 순간에 “내정 간섭”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협상 결렬 이후 트럼프와 시 주석은 모두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중국은 온·오프라인 매체들과 SNS를 통한 ‘인민의 전쟁’까지 동원하고 있다.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한 뒤 이를 해당국 상품 불매운동, 관광 취소, 무역제재 등의 압력수단화하는 것은 중국이 21세기 들어 자주 동원하는 신무기다. 일본과의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 및 우리의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사드) 배치 당시 등장했었다. 2010년 류샤오보에 대한 노벨평화상 수여를 빌미로 노르웨이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명대화 대회장에서 서 있다. 베이징/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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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은 민족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불매운동, 우리도 ‘싸드의 경험’이 있다.
미는 대선, 중국은 ‘신중국 건설’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두 지도자 모두 뭔가 보여줘야 한다.
두 나라 모두 경제적 자신감도 있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현실, 이것이 ‘세계 경제의 현상’일까.
중국 관영매체는 단순히 위기 극복의 자신감을 내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감정을 건드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 베이징 특파원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의 사설에 ‘인민전쟁(人民戰爭)’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에 주목했다. 교역 문제가 민족주의와 연결되면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양국 관계에 더 깊은 내상을 입힌다. 미·중관계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양측이 무역협상에 강 대 강으로 맞서는 배경에는 최근의 경제성과가 있다. 미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예상을 깨고 3.2%(직전 분기 2.2%)에 달했다. 지난 4월 실업률은 3.6%로, 50년 만에 최고 성적이다. 중국 경제도 되살아나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이 6.4%에 달했다. 지난 4월 수출이 줄었지만 안정국면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BRI) 정상회의에 40개국 정상이 모이면서 국가적 자신감도 높아졌다. 정치적으로도 양측은 물러서기 어려운 처지다. 트럼프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역전쟁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거나, 무역적자를 해소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안들은 상당 부분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부터 약속했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시 주석은 설령 극적 타협안이 도출되더라도 미국에 굽히고 들어갔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올 10월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잃을 게 더 많다. 극적인 돌파구가 없다면 상당기간 긴장 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주는 근거들이다.
뉴욕타임스는 14일 트럼프의 위협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라고 짚었다. 미·중 간 고율관세가 새로운 노멀(기준)이 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중 무역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월가 주식시세도 폭락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 경제의 견실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장이 이미 트럼프의 의중에 적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뉴욕증시의 S&P 지수는 트럼프의 폭탄발언이 나온 지난주 첫 3거래일에 2.2%만 떨어졌다. 이번주 들어 13일 추락했지만 14일 반등했다. 고율관세를 감안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주가 안정을 기업들이 가격하락에 대비해 위험을 분산할 때 동원하는 풋옵션에 비유해 ‘트럼프 풋(Put)’이라고 표현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이처럼 일상이 된다면 세계 경제는 짙은 안개 속을 항해해야 한다. 낯선 환경이기에 선명한 관측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우려하면서도 다시 한번 ‘설마’를 붙들고 있는지 모른다. 다트머스대의 교역사학자 더글러스 어윈은 뉴욕타임스에 “미국의 관세가 미·중 경제결합을 분리하는 쪽으로 활용된다면 세계 경제의 새로운 현상(status quo)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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