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만연한 혐오 발언, 망언, 극언, 막말은 새삼 대표권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지금 정치 지도자, 정치 참여자들은 서로 사이코패스, 한센병환자, 도둑놈, 달창으로 불린다. 주권자 시민으로부터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상대를 부르는 이 호칭들이 맞다면, 당연히 그들 모두 대표자 자격을 상실한다. 사이코패스와 도둑놈이 대표하는 한국정치라니, 이거야말로 주권자 시민을 모독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언어는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을 드러낸다. 정치언어의 관점에서 요즘 한국 정치를 평가하면 정적(政敵) 간 대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마디로 정적의 정치는 해칠 수 없지만 해치고 싶은 정치, 죽일 수 없지만 죽이고 싶은 정치다. 이런 정치에서 말은 총알이 되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판다. 말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소총에 장전할 탄환으로 쓰이는 한, 정치인의 연설과 발언에서 맥락과 논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인의 말은 설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정치적 생명을 끊기 위한 것이므로, 필요한 것은 치명상을 입힐 단어 하나뿐이다. 그 나머지 말들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치명적 단어가 정말 치명적인 이유는 시민들 사이에 주요 의제를 숙고토록 하는 게 아니라, 분노의 감정을 자극해 정치를 전쟁으로 대체한다는 데 있다. 전쟁을 대신하는 정치라는 본래 기획은 이렇게 전복된다. 전쟁정치를 하면 속풀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대근 논설고문
▶ 최신 뉴스 ▶ 두고 두고 읽는 뉴스 ▶ 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