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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여적]정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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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총·칼을 들고 싸우는 대신 대리인을 내세워 토론과 논쟁의 방법으로 이익 갈등을 조정토록 고안된 장치다. 피 흘리는 것보다 덜 해롭다는 점에서 정치는 꽤 유용한 발명품이다. 이해 당사자가 충돌하면 전쟁해도 시원찮을 일도 대리인을 통하면 절충 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대리인이 주인을 충실히 대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주권은 대표되거나 양도될 수 없다며 대리인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정치인은 시민의 대표자가 아니라, 시민의 대행인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루소는 주장했다.

최근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만연한 혐오 발언, 망언, 극언, 막말은 새삼 대표권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지금 정치 지도자, 정치 참여자들은 서로 사이코패스, 한센병환자, 도둑놈, 달창으로 불린다. 주권자 시민으로부터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상대를 부르는 이 호칭들이 맞다면, 당연히 그들 모두 대표자 자격을 상실한다. 사이코패스와 도둑놈이 대표하는 한국정치라니, 이거야말로 주권자 시민을 모독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언어는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을 드러낸다. 정치언어의 관점에서 요즘 한국 정치를 평가하면 정적(政敵) 간 대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마디로 정적의 정치는 해칠 수 없지만 해치고 싶은 정치, 죽일 수 없지만 죽이고 싶은 정치다. 이런 정치에서 말은 총알이 되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판다. 말이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소총에 장전할 탄환으로 쓰이는 한, 정치인의 연설과 발언에서 맥락과 논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인의 말은 설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정치적 생명을 끊기 위한 것이므로, 필요한 것은 치명상을 입힐 단어 하나뿐이다. 그 나머지 말들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치명적 단어가 정말 치명적인 이유는 시민들 사이에 주요 의제를 숙고토록 하는 게 아니라, 분노의 감정을 자극해 정치를 전쟁으로 대체한다는 데 있다. 전쟁을 대신하는 정치라는 본래 기획은 이렇게 전복된다. 전쟁정치를 하면 속풀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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