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내게 5‧18은 '암기'의 대상이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한국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그래서 시험 준비를 위해 무심히 외우기만 했던 과거의 사건이었다. 그때 난 4‧19, 5‧18, 6월 항쟁 등 일련의 역사를 하나로 묶어서 기억했다.
자연히 물밑에 감춰진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소리내어 울 수조차 없었던 시대의 엄혹함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내게 5‧18은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금방 잊혀지고야 마는 그런 존재였다.
5‧18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처한 '오늘'의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 것은 굳이 암기할 필요가 없어진 다음이었다. 대학에 입학해 광주를 처음으로 답사하고 돌아오는 길, 비로소 광주의 이야기를 교과서 속 한두 줄의 문장이 아닌 마음으로 그려보게 됐다. 자원봉사를 하며 만난 이들이 5‧18 이후 사회적 낙인 속에 또 한 번 아파했던 경험을 들으면서도 그랬다.
광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5‧18은 분명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다. 그날 계엄군을 앞에 두고 갈가리 찢긴 광주의 상처가 아직까지 아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슬픈 이야기를 가진 이들이 우리 근처에 분명히 숨어있어서다. 5‧18을 왜곡하고 이로부터 값싼 영광을 얻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광주는 아물 수가 없었다.
이는 수많은 우리를 위해 국회가 앞장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정치부 기자가 돼 마주한 5‧18은 여전히 갈라진 상태 그대로다. 국회는 법안처리에 소홀한 채 공허한 싸움만을 계속했고, 누군간 망언을 일삼아 표를 얻었다. 이에 정작 국회로 찾아와 차디찬 바닥 위에서 절규하던 5‧18 피해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몇 십년의 세월동안 곪아들어간 그 상처를 잘 다듬어 치료해줄 국회의 '약손'이 필요한 때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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