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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권 시절 장외투쟁은 야당의 최후의 선택이었다. 국민들의 동조를 원동력으로 삼아 대정부 투쟁, 압박 등을 진행하기 위해 야당은 거리로 나섰다. 장외투쟁은 야당의 숙명처럼 여겨지지만 성공한 장외투쟁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야당이 최초로 전개한 장외투쟁은 1956년 8월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벌어졌다. 민주당 등 야당연합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정권이 지방선거 입후보자를 검거하거나 후보등록을 방해하자 이에 반발해 '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연도시위를 벌인다.
이후 권위주의 정권이 붕괴될 때까지 한국정치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1986년 3월 직선제 개헌을 거부한 전두환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선 신한민주당의 '1000만인 서명운동'이 대표적이다. 신민당은 국민과 함께 거리로 나서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1960년 4.19 혁명, 1969년 6월 3선개헌 반대 투쟁처럼 시민들이 주도한 시위에 야당의원과 재야인사들이 동참한 경우도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야당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최후의 수단이었던 장외투쟁은 권위주의 정권이 막을 내린 뒤에도 이어진다. 과거 민주계 정당의 전유물이 었던 장외투쟁을 보수정당도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뜻에 힘입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외면 속에 슬그머니 장외투쟁을 철회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보수정당이 처음 장외로 튀어나간 것은 1998년 9월이다. 1997년 대선 패배로 야당이된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에 나선다. 대선자금 불법 모금과 관련된 이른바 '세풍사건' 검찰 수사, 여당의 한나라당 의원 영입 작업 등에 반발하면서다.
당시 한나라당은 민정계와 민주계의 합당을 통해 만들어진 신한국당을 이어받은 정당이다. 민정계는 권위주의 정권시절 야당 경험이 없고 민주계도 독재정권의 붕괴와 함께 5년동안 여당생활을 하면서 야성을 많이 잃은 상황이었다.
이회창 총재는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김대중정권이 나를 법관 백면서생쯤으로 생각했다면 크게 잘못 본 것이다. 나는 싸울 바에는 야만(?)스럽게 싸워서 김대중 정권이 야당 탄압이 스스로 자기 손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한다. 33일간 이어진 이 장외투쟁은 보수정당이 생존을 위해 처음으로 벌인 장외투쟁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장외투쟁에서 성과없이 빈손으로 투쟁을 철회하는 경우가 잦았다. 1999년 1월 '안기부 정치사찰', 5월 '정부조직법 강행처리' 11월 '언론대책문건' 등에 반발하며 세차례나 장외투쟁을 이어갔지만 잦은 장외집회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 지역감정 조장에 대한 반감 등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보수정당의 장외투쟁 중 그나마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사학법 반대투쟁이다. 노무현정권 시절인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53일간의 장외투쟁을 벌인다. 겨울한파 속에서 투쟁을 주도하면서 박근혜 대표는 야권의 리더로 올라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장외투쟁은 다시 민주당의 몫으로 돌아갔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는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42일간 시민단체가 주도한 촛불집회에 동참해 뜻을 관철시킨다.
그러나 장외투쟁에 익숙한 민주당조차 성과없이 장외투쟁을 철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9년 '미디어법' 처리 원천무효 장외투쟁으로 100일간 국회를 떠났지만 소득없이 복귀했다. 2011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 반발 장외투쟁 등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한미FTA 반대 장외투쟁의 경우 김진표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묻는 등 당내갈등만 더 심해졌다.
다시 정권이 바뀌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야당이된 자유한국당은 수시로 '장외투쟁'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 시절인 2017년 9월,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반발해 장외투쟁을 선언했다가 1주일만에 빈손으로 복귀했다. 그해 10월에도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 선임에 반발해 국회 밖으로 나갔지만 나흘만에 슬그머니 돌아왔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도 장외투쟁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4월에 광화문집회를 열었고 지난 7일부터는 부산을 시작으로 한달간 전국을 돌며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 대장정'을 진행한다. 성공하면 '사학법 투쟁'을 이끈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보수정당의 지도자로 매김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장외투쟁은 양날의 검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성공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고립될 수 있다. 당내 내분을 가져오는 점도 역사의 교훈이다. 양당제 구도가 아닌 다당제 구도인 탓에 한국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하더라도 국회가 운영될 수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김민우, 강주헌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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