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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고 장자연 사건

[취재파일] 메신저 윤지오의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故 장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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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재조사 중인 故 장자연씨 사건. 2009년 3월 7일 사망한 장자연씨는 사건 초 단순 자살로 종결될 뻔 했다. 그런데 이른바 장자연 문건이 보도 되며 장씨 사건은 단순 변사가 아닌 연예인 성 착취 등과 관련한 '게이트 급 사건'으로 재조명 됐다.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수사를 벌였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장자연 문건에 등장한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군지는 끝내 규명되지 않았다. '장자연 (성 접대) 리스트'가 있다는 의혹 속에 장 씨 통화 내역 등을 근거로 적지 않은 사람이 수사를 받았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됐다. 장자연씨는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그 의문은 규명되지 못 했다.

● 숱한 의혹 묻힌 故 장자연 사건, 그리고 윤지오의 증언

의혹 속에 묻혀 있던 故 장자연씨 사건은 검찰 과거사위가 해당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장자연 문건과 장자연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윤지오씨가 등장했다.

윤 씨는 자신의 책에서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봤고, 문건 속에 40-50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 기록으로 제출되기도 한 4장의 문건 외에 3장의 문건이 더 있었고, 그 3장의 문건에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문건을 이미 불타 사라졌고, 문건을 자세히 본 걸로 추정되는 다른 사람들은 나서지 않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사라진 문건을 본 사람, 특히나 의혹의 '리스트'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증언을 했으니, 국민적 관심이 윤지오씨의 입에 쏠린 건 당연지사였다.

더구나 진술 번복 등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故 장자연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조선일보 기자 사건과 관련해 윤 씨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한 걸로 알려진 만큼, 윤 씨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컸다. 故 장자연씨 사건과 관련한 은폐된 진실을 규명하는데 윤 씨의 진술이 단초가 돼 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 커진 영향력만큼이나 커진 발언의 무게감

윤씨는 40-50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있었다는 주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리스트 속에 있던 언론인 3명과 국회의원 1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며 언론과 대검 진상조사단에 진술한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은 자신이 과거 술자리 등에서 만난 적도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구체적 이름까지 기억해 진술했다는 윤지오씨. 대중은 윤 씨 진술을 계기로 감춰진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랐다.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의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이 규명돼 故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이 위로 받을 수 있기를, 늦었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단죄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객관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윤 씨의 진술을 무조건 믿는 건 위험하다. 부정한 사람은 응당 처벌 받아야 하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건 현대 사법의 대원칙이다. 윤 씨 진술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그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지 검증이 필요한 이유다.

● 윤지오 진술에 대한 신빙성 의혹 제기

그런 와중에 윤 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윤 씨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한 김수민 작가, 윤 씨를 사기 혐의 등으로 고발한 박훈 변호사 등이다. 이들의 주장에 일각에서는 메신저를 공격한다거나 故 장자연씨 사건의 본질을 덮으려고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를 공격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런데 비판의 단초는 윤 씨 스스로 제공했다. 7장의 문건을 봤다는 윤지오씨. 그렇다면 재판에 공개된 4장의 문건 외에 3장의 문건을 봤어야 하지만,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추가로 본 문건은 4장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 놨다. 그리고 자신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가해자로 몰아 부치며 질문을 봉쇄했다. 메시지를 검증해 보자고 하니, 메신저를 공격한다며 질문을 차단한 것이다.

자신에게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해외로 출국하면서 진술 신빙성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켰다. 메신저 윤지오씨가 내놓은 메시지가 신빙성이 있는지 검증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에 대한 검증, 그것이 故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든든한 주춧돌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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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오, 장자연 문건을 보긴 했지만…

일각에선 윤 씨가 장자연 문건을 본 것이 맞느냐는 의문도 제기되지만,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윤지오씨가 장자연 문건을 본 건 사실인 걸로 보인다. 문건을 소각한 현장에 있었다는 사람들도 윤 씨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일단 윤 씨가 문건을 보긴 한 걸로 보인다.

문제는 윤 씨가 어떤 문건을 봤는지, 봤다는 문건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느냐는 거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매니저 유 모 씨 등의 진술을 종합하면, 윤지오씨가 문건을 본 시간은 길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 봉은사에서 장자연씨 유가족이 도착하기 전까지의 차에서 대기 시간, 그리고 유가족과 함께 이른바 원본 문건을 불태울 때 같이 있었던 시간 등 길지 않은 시간이다.

아무튼 윤 씨는 이 시간 동안 재판에 제출된 4장의 문건 외에 3장의 문건까지 모두 7장의 문건을 봤으며,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 속에 국회의원 이름도 있었고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앞선 4장의 문건 속 내용과 관련해, 기억이 가장 선명했을 경찰 조사 때 윤 씨의 진술은 다른 사람의 진술과 부딪치는 점이 발견된다. 문건 작성에 개입한 매니저 유 씨와 장례식장에서 문건을 건네 받아 장시간 문건 내용을 살펴봤던 장자연씨 유가족 진술은 4장의 문건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하지만, 윤 씨의 진술은 4장의 문건 내용 일부를 포함하지만, 내용을 서로 연결해 새로운 내용까지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 '장자연 리스트'는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 내용을 알 수 없는 3장의 문건. 이에 대해 매니저 유 씨와 유가족은 사람 이름이 일부 적혀 있었다고 진술했다. 유 씨는 '故 장자연씨가 소속사 대표를 상대할 때 조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취지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아무튼 '장자연 리스트'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 사라진 3장의 문건에 적혀 있긴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씨의 주장처럼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형태는 아니라는 입장인 걸로 전해진다. 윤 씨는 자신이 본 문건이 국회의원 이름이 있었고, 이름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주장하지만 매니저 유 씨 등은 사라진 문건 속에 정치인 이름은 없었다고 진술한 걸로 알려진다. 윤지오가 과장했거나 잘못 봤을 수 있다는 취지다.

물론 매니저 유 씨가 문건 작성에 개입했고 장시간 문건을 봤더라도, 윤 씨의 기억이 더 또렷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대검 진상조사단은 윤 씨가 과거 조사 과정에서는 리스트의 존재를 이야기 하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관련 언급을 하고 있다는데 주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니저 유 씨 등 2명은 문건에 이름이 여러 명 적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과거 경찰 수사 때 이미 한 적이 있는데, 윤 씨가 국회의원 이름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면 과거 조사 때도 그 존재를 이야기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 윤 씨는 과거 장자연 문건의 내용을 묻는 경찰의 질문에 재판에 제출된 4장과 관련해선 일부 잘못된 내용을 포함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름이 빼곡히 적힌 리스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왜 당시 사라진 3장의 문건 중 1장과 1/3 정도를 차지했다는 그 리스트의 내용은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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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도 봤고, 얼굴도 봤다는 정치인 특정 실패

윤 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리스트 속에서 본 국회의원 이름은 복수였다며, 그 중 1명의 이름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문건 속에서 이름을 봤고, 술자리 등에서 실제 만나기도 했다는 국회의원을 사진을 통해선 특정하지 못 했다.

한 조사팀 관계자는 "윤 씨가 언급한 국회의원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자신이 말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며, "과거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해 찾아서 보여줬더니 역시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윤 씨가 말한 국회의원을 특정하지 못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관계자는 "윤 씨 스스로 국회의원이라고 소개 받은 적은 없고, 단지 코트에 달린 특이한 배지를 보고 국회의원이라고 추정했다"고 말했다며, "윤 씨가 지목한 국회의원의 대표적인 특징과 전혀 상반되는 진술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윤 씨의 진술 안에서 모순점이 발견된다는 의미인데, 윤 씨는 문건에서 봤다는 또 다른 국회의원의 이름은 끝내 조사단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 "특정 팀원의 여론 호도, 호도된 여론 이용"

이런 상황이라면 윤지오씨의 핵심 진술 일부의 신빙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윤 씨의 입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대검 진상조사단 관계자 A씨는 특정 팀원이 특정 방향으로만 언론에 이야기 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의 이야기다.

"윤지오씨가 본인이 직접 대면하기도 했고, 문건에서 이름을 보기도 했다는 국회의원을 정작 구별하지 못 한 것을 모두 알고 있는 한 조사팀 팀원이 언론에서는 윤 씨의 이야기가 굉장히 신빙성이 있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윤지오씨의 기억력이 대단하다며 칭찬하기도 하면서 윤 씨 진술 신빙성에 대한 여론을 호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여론을 이용하고 있다."

언론 접촉이 많은 특정 팀원의 이야기가 조사단 전체의 입장으로 비춰지는 것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이미 있었다. 대검 진상조사단 단원이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달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박 변호사는 '언제부턴가 개인 또는 일부의 의견이 진상조사단 전체의 의견인양 보도되고 있다"며, '진상조사단 팀원 개인이 단체의 의견인양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언론이 주로 접촉하는 조사단 팀원은 공보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인데, 그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개인 의견을 조사단 전체의 의견인 양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보인다.

● 정치적이지 않은,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객관적 진상 규명

故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 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평가 받을 필요가 있는 윤지오씨는 돌연 해외로 출국해 버리면서 자신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켰다. 윤 씨의 출국 이후, 그리고 윤 씨의 진술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 이후 나오고 있는 故 장자연 사건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윤 씨가 사건의 본질에 다가서는 걸 도와줄 수 있는 특급 도우미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윤 씨에게 주목하는 사이, 본질 보다 윤 씨에 대중의 여론이 집중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앞으로는 차분하게 윤 씨의 진술을 검증해 취할 건 취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진술이나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여론이 이러니 결론이 이래야 한다는 식이라면 여론이 바뀌었을 때는 어찌해야 할까. 국민이 공적 기관에 기대하는 건, 그리고 법률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여론의 방향과 관계없이 사건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규명되는 것이다. 故 장자연씨 죽음의 의혹이 객관적으로 규명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10년 째 풀리지 않고 있는 '조선일보 방사장'의 실체도 확인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정치적이지 않은, 개인이 이익이 개입되지 않은, 과정까지 공정한 진상 규명이 故 장자연씨의 원한을 진정으로 풀어주는 것 일 테다. 故 장자연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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