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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국회와 패스트트랙

"공수처법보다 수사권조정법안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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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범위 대통령령에 위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쥐락펴락

인사권에 더해 제도로도 장악

"文 사활 건 공수처법보다 더 무섭다"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패스트트랙 격전지 국회 본관 가보니
중앙일보

지난 26일 새벽 국회 본관 7층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와 방호과 직원 등이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 법안 제출을 위해 빠루와 쇠망치를 동원해 의안과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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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국회의원이다. 질문이 ‘대한민국에서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직업군이 어디냐’라면 말이다. 국민의 표를 받아 대표로 선출되지만 선출되는 그 순간 당에 표를 고스란히 갖다 바치고 예속이 된다. 입법 때 당론이 먼저고 민의는 뒷전이다. 무슨 조직폭력배 집단같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화와 타협과 절차는 과감히 무시한다. 그러니 민의의 전당이라는 곳에 빠루(‘노루발못뽑이’)와 해머(‘쇠망치’)가 8년만에 재등장한 게 이상할 까닭이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야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경수사권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에 태우는 과정은 야합의 정점을 찍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던 ‘식물국회’가 몸싸움이 난무하는 ‘동물국회’로 급전환됐다. 패스트트랙에 숨겨진 비밀코드를 추적해봤다.

여야 4당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가결한 다음날(30일) 서울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전쟁같은 공방이 끝난 후의 적막감이 전 층에 흘렀다. 격전지를 돌아봤다. 원래 사법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열릴 예정이던 220호(제5회의장)·445호(행안위 회의실)부터 들렀다. 뜻밖에 445호의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서니 창문을 통해 봄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곧바로 실제 사개특위 의결이 이뤄진 506호실(문체위 회의실), 정개특위 의결이 진행된 604호실(정무위 회의실)로 향했다. 604호에 가니 내부가 어둑어둑했다. 단상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태극기가 보였다. 문득 전날(29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만난 검찰 관계자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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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찾은 국회 본관 604호. 전날 정개특위가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한 곳이다. 치열했던 격돌의 흔적 하나없이 고즈넉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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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에 태웠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이번에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표결 처리할 법안 순서를 정해놓은 걸 잘 봐야 한다. 처리 기한인 330일 뒤는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지역구 의석이 28석 줄어드는 선거법과 ‘누더기’가 된 공수처법은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수사권 조정만 남는다. 청와대와 여당의 복심이 그것같다. 조국 민정수석의 페이크(속임수) 아닌가 싶다.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이라고 포장하고 수사권 조정을 관철시키려는 의도라고 본다. 문제는 수사권 조정이 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는 국민들이 진짜 잘 모르는 게 바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숨겨진 검찰 장악 비밀 코드라고 했다. 해당 안에 따르면 검사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등 중요 범죄와 경찰 공무원의 직무 범죄, 이들 각 범죄와 관련한 위증·증거인멸·무고 등 범죄만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리고 향후 검찰 수사 대상의 범위를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했다. 그게 결정적 문제 조항이라는 거였다. “국회에서 수사권 조정을 논의하는 순간 검찰은 국회에 대해서 꼼짝 못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국무회의를 열어 수사권을 줬다 뺐었다 하면 어찌 되겠나.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 권력기관이라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문제가 있어 공수처를 만든다고 하고는 정작 검찰의 고삐를 더 세게 쥔 격이다. 조국 수석의 검찰 장악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지금까지 검찰 인사에 목 매느라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힘들었다면 이젠 제도에 더 목이 매달리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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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루가 8년만에 재등장해 ‘동물 국회’ 논란을 불렀던 국회 본관 의안과 702호실의 지난 30일 모습.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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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무슨 의미인가.

A : “이 상황에서 공수처가 생겨 대통령, 여야 국회의원, 청와대 친인척, 장차관, 군 장성,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등의 비리를 수사해서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보냈다 치자. 검찰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쉽겠나. 공수처에서 아무리 의지를 갖고 수사를 해도 검찰에서 더 왜곡시킬 수 있는 구도가 됐다. 공수처가 수사해 기소까지 할 수 있는 직군은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이다. 그런데 경찰 고위직 비리는 검사가 계속 적발, 처벌해 왔다. 사법부 수사로 100여명의 판사가 적폐 낙인이 찍혔고 이후 판사도 검사를 미워하니 남는 건 검사 뿐이다. 검사 비리 수사·기소처라는 것이다.”




Q : 국회의원들이 막판에 공수처의 기소 대상에서 빠졌는데.

A : “2014년 특별감찰관제 도입 때와 2015년 김영란법 제정 때 슬그머니 자기들은 적용 대상에서 뺀 것을 연상케 한다. 명백한 반칙이자 특권 행사다. 특히 공수처법은 그동안 사개특위에서 아예 논의된 적이 없다. 볼썽 사나운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공식적으로는 공수처 신설은 받아들인다는 입장이지만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수사권 조정에는 반대해왔다. 문제는 타협의 결과 본래의 모습에서 이탈한 공수처법은 큰 혼선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기소 대상자인 판사·검사·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등 세 직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준 것도, 뇌물 받은 사람은 공수처가 기소하고 뇌물 공여자는 검찰로 보내 기소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사태의 심각성은 형사 사건들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별장 성접대 사건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현직 검사 때 적발됐다고 치자. 사건 연루자가 10여명 된다고 하면 뇌물수수, 음주운전, 공갈·협박 등의 여러 범죄가 줄줄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김학의는 검사고 윤중천은 민간 건설업자다. 이 경우 김학의는 공수처가, 윤중천은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 수사중에 국회의원의 혐의가 나오면 검찰로 송치해 기소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소 시효, 뇌물·김영란법 위반 등 적용 법규에서 공수처와 검찰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기소하면 공소 유지를 누가 하나. 두 기관의 합의절차 규정이 없고 중재 기구도 없다.”(김웅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

법조계에선 이번 패스트트랙 강행의 배경으로 청와대와 조국 민정수석을 지목한다. 대통령 공약 1호가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지난 1~2월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의 관철을 강도높게 주문했다. 조 수석도 지난 1월 “국민 여러분, 도와달라”는 글(행정부와 여당의 힘만으론 부족하다는 취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필두로 지속적으로 검찰 개혁을 압박해왔다. 특히 2004년 참여정부가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을 때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모두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제도 개혁을 추진했어야 옳았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는 조 수석이 지난 2월말 공수처 신설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답하며 “야당 탄압 수사가 염려되면 국회의원 등 선출직을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집권 세력의 전략적 선택 아니냐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이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보임하는 강수를 둔 배경에 대해 검사장 출신 로펌 변호사는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지역구가 군산이다. 잠재적 경쟁자였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중앙대 앞 흑석동 상가 건물 문제로 낙마하면서 협상의 여지가 생겼고 그래서 김 원내대표가 사·보임의 총대를 맨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 사·보임 절차와 관련한 민주당의 설명은 거짓말이다. 2003년 국회법 48조 6항 개정시 회의록과 국회법 해설서에 딱 나와 있다. 임시회의는 길어야 30일이니 그 동안에는 사보임 못하게 하는 취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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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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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임 관련 국회법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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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임 관련 국회법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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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702호 의안과로 갔다. 지난 26일 새벽 민주당 사람들이 패스트트랙 의안을 팩스로 접수하려다 여의치 않자 직접 서류 접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던 곳이다. 이때 빠루와 쇠망치가 등장했고 여럿이 다쳤다. 당시의 격렬함을 웅변하듯 문 전체가 스티로폴과 청테이프로 땜질이 돼 있었다. 그 앞에서 국회사무처 직원 둘이 “이걸 보러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데”라고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내가 “저거 안 고치나요”라고 묻자 그가 씩 웃더니 “고쳐야죠”라고 하고는 휙 지나갔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의원총회에 당일 몸싸움 과정에서 획득한 빠루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는 보도가 기억났다. 나 원대대표실에 가서 그 빠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사무실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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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실 직원이 빠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 26일 새벽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과의 치열한 몸싸움 도중 획득한 것이라고 했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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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의 상징 빠루는 묵직하고 고약하게 생겼다. 그게 국회사무처 방호과에서 가져왔든, 민주당이 딜리버리를 요청했든 경악스런 사태다. 독일어에서 ‘나는 정의롭다’와 ‘나는 복수했다’라는 문장은 모음 하나 차이라고 한다. 니체의 『짜라투르투스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에 나온다. 특혜와 특권이 200여가지가 넘는 국회의원들이 반칙도 왕(王)이라면 힘없고 빽없는 시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조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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