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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전력 수요 감축 급한데… 전기료 인상 등 국민 설득 난제 [닻 올린 ‘‘에너지 전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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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낮은 수준의 전기요금 유지땐 / 기업 등 시장동참 끌어내기 어려워 / 가격인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등떠밀기식으로 에너지 설비 확대 / 정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반복 / 인상 요인 투명공개… 현실화 필요

세계일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요를 줄여 소비 구조를 혁신하는 내용을 담았다. 발전과 같은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에서 벗어나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생산 효율을 높여가겠다는 것인데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에너지 수요 감축을 위해서는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인화성 높은 현안을 건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마다 에너지 수요 감축이라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막상 전기요금 인상과 같은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느 정부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2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 수요(원료용 소비 제외)는 2017년 1억7600만TOE(석유환산톤)에서 2014년 2억1100만TOE로 늘어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1980∼1990년대까지는 전력소비가 증가 추세를 보였으나 2000년 이후 증가 추세가 완화하거나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전력소비는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산업부문의 전력소비 비중이 주요국에 비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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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980∼199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전력소비량 증가율은 약 3%였다가 2000년 이후에는 1% 미만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기간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격차가 크다. 아무리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키운다 하더라도 수요 및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에너지 전환’이 연착륙하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 구조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 이유는 정부와 정치권이 에너지 요금인상에 소극적인 행태를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요금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업이든 가정이든 자발적인 감축을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에너지 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이 수출 경쟁력을 낮추고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동시에 에너지 업계에서는 전기를 만드는 비용보다 전기료가 싼 현행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결국 에너지 수요 관리의 성공 여부는 기업과 가정이 수용 가능한 요금 개편안을 도출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의 임재민 연구원은 “에너지 수요를 혁신하기 위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함께 시장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와 같은 낮은 수준의 전기요금으로는 시장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비용이 일단 인상돼야 이를 줄이기 위한 기업별 실질적인 노력이 뒤따를 것이고, 에너지 이용·생산과 관련한 시장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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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3차 에기본에서도 정부는 에너지 소비 구조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내걸었지만 그 내용은 자발적, 자율적인 실천에 기대하는 부분이 크다. 에너지원 단위 목표 관리를 위한 기업 간 자발적 협약을 추진하거나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수요관리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요금이 적정선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시장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 또한 일어날 수 없다. 억지로 등을 떠밀기 위해 에너지 생산·이용 효율화 설비를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의 보조금 규모만 키우게 된다. 보조금을 받지 않는 것보다는 받는 게 나은 정도의 상황만 지속하기 때문에 관련 기술 및 설비의 발전은 이뤄지지 않고 정부 예산만 소모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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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중에서 비중이 가장 큰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소극적이지만, 그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온실가스 배출과 미세먼지 등 여러 외부 요인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매번 요금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꺼내 들지 못했다.

온기운 숭실대 교수(경제학과)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나 가격 인상을 통해 시장에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아직 비중이 미미한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반영해 에너지 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금인상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중요하다. 경제 발전에 발맞춰 시민의식도 성장해온 만큼 정부가 요금인상을 무작정 기피하기보다는 그에 대해 제대로 설득하는 노력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임 연구원은 “전력 요금이 인상된다면 어떤 요인에 따라 부문별로 얼마만큼이 인상됐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설득력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며 “전기요금에 대한 명목비용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질비용 차원에서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컨슈머의 이서혜 연구실장은 “실제 소비자들을 만나보면 무조건 싼 상품만 찾는 것이 아니라 편리성과 접근성 등 여러 가치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면밀한 조사를 통해 소비자와 보조를 맞추고 요구를 잘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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