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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색안경 곤란” VS “제2의 안인득 막자” 불 붙은 조현병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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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진주경찰서는 '묻지마 살인'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42)의 얼굴을 19일 공개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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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방화ㆍ살인 사건으로 조현병 환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의자 안인득(42)이 과거 68차례 조현병으로 진료를 받았는데, 최근 2년 9개월 동안은 치료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특히 안인득이 이전에도 공격적인 성향으로 강력 범죄의 징후를 보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논란의 불씨가 더 커졌다. 안인득은 2010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행인에게 흉기를 휘두르는가 하면, 이웃들에게도 행패를 부려 처벌받은 이력이 있었다.

안인득에서 시작된 불씨는 다른 조현병 환자들에게까지 번졌다. 극단적인 ‘묻지마 범죄’를 막기 위해선 증세가 심각한 환자들을 국가에서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일부의 범죄를 이유로 다른 조현병 환자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건 잘못된 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현병은 무엇인가
정신질환의 하나인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정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악기의 현을 고르다’는 뜻의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악기의 줄처럼 이어진 뇌의 신경구조가 잘 조율되지 않아 정신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약물치료 등으로 충분히 관리될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의사들은 망상이나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6개월 이상 지속하면 조현병으로 판단한다. 조현병 환자가 전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환자들은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조현병의 발병 원인은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유전적 요인은 물론 스트레스 등 사회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병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이승홍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선천적, 생물학적 이유도 있지만 사회ㆍ심리적 원인도 작용할 수 있어서 명확하게 발병 원인을 단정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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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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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조현병의 유병률은 약 1%다. 국내에는 증세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약 50만 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조현병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2년 10만980명, 2017년 10만7662명으로 5명 중 한 명이 병원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고 있었나
조현병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도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았다는 게 드러나 논란이 된 강력 사건들이 있었다.

2016년 5월 발생한 수락산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김학봉(63)은 수락산에서 등산하던 60대 여성을 가로막고 흉기로 찔러 살해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변호인은 김학봉이 조현병이 있는 상태에서 망상과 환청이 들리는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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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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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0월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을 일으킨 성병대(48)도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망상 장애에 시달리던 그는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경찰에게 사제 총기를 쏴 숨지게 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여성들을 거리로 불러낸 ‘강남역 살인사건’의 가해자인 김성민(36)도 피해망상 증세가 있는 조현병 환자였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심신미약을 인정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정신과 전문의 고(故) 임세원 교수가 자신이 치료하던 정신질환 환자에게 피살되는 비극이 있었다.

“실제 범죄율 낮아” VS “묻지마 범죄 가능성 커”
조현병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먼저 조현병 환자들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씌우고 차별하는 건 반(反)인권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실제 단순 통계로 보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전체 인구의 범죄율보다 더 떨어진다. 대검찰청의 2017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중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비율은 0.136%였고, 전체 인구로 따지면 3.93%로 약 29배나 높았다. 강력범죄로 범위를 좁혀도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율은 0.014%인 반면 전체 인구의 강력 범죄율은 0.06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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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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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조현병 환자들은 오히려 소극적이고 폭력과 거리가 먼 경우가 더 많다”며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관리를 받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치료가 중단되거나 시기를 놓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범죄율과 관계없이 일부 조현병 환자들이 ‘묻지마 범죄’를 일으키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만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반 피의자들의 범죄가 주로 피해자와의 갈등, 금전적 목적 등 인과 관계가 있는데 반해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는 피의자와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대검찰청의 2018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2017년 검거된 살인 범죄자 중 9.3%가 정신질환이 있었다. 방화 범죄의 경우 13%로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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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이미지. [중앙포토]


조현병 범죄, 대책은?
각종 ‘묻지마 사건’으로 촉발된 조현병 논란은 자연스레 국가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인득도 과거 수차례 ‘이상 신호’를 보였지만 관계 기관에서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전에도 조현병 범죄가 발생한 뒤 국가 기관 차원의 대책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실효성엔 의문 부호가 붙는다. 경찰에서는 지난해 위험성이 큰 정신질환자에 대한 판단 매뉴얼을 마련했다. 정신질환자가 이상 행동으로 처벌을 받은 사례가 있으면 출동 경찰이 최대 3일간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현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매뉴얼이 있다고 해도 비전문가인 경찰이 강제 입원 등 조치를 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인권 침해 논란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보건 당국, 경찰, 지역 사회 등이 나서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참극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대외협력팀장은 “기초수급자 등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의료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고위험군 환자는 방치를 하지 말고 방문 확인을 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승 팀장은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나 현재 유명무실화된 치료명령제도를 활성화해 국가ㆍ지자체 차원에서 환자들을 관리해야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방 차원을 넘어 좀 더 적극적으로 고위험군 정신질환자에게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 전력이나 증상 등을 철저히 분류해 고위험군인 환자들이 이상행동을 보이면 즉각 보호·격리 조치를 하는 등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강제 조치라기보다 치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 고위험군 환자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오히려 인권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국희ㆍ이태윤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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