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매우 어렵다" 대립각 세우며 북·러엔 유화 제스처
'징용공' 대신 '노동자' 표기…文의장 '일왕 사죄' 발언 비판도
'초계기' 언급하며 韓 비난…'독도=일본땅'·'일본해' 주장 되풀이
대화 모색 북한엔 '중대한 위협' 삭제…러와 영토갈등 언급 피해
[연합뉴스TV 제공] |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23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한 2019년판 외교청서에는 한국과의 갈등을 부각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내용이 두드러졌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기존에 썼던 부정적인 표현들을 삭제하고 정부 차원의 관계 회복 노력을 부각했으며, 러시아에 대해서도 영토갈등 지역에 대한 영유권 표현을 없애며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올해 외교청서는 한일 관계에 대해 "매우 어려운(きびしい) 상황"이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 해군함정의 자위대 초계기에 대한 화기관제레이더 조사(照射·겨냥해서 비춤) 문제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적었다.
한국과의 관계에 대한 우호적인 표현을 지운 채 갈등을 부각한 것으로, '초계기-레이더 갈등'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에 책임을 돌렸다.
갈등 부각하며 한국 홀대…日 외교청서 |
작년에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 기사를 1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는데, 올해 외교청서에서는 이런 부분이 2페이지로 늘었다. 화해·치유 재단 해산 등을 다루면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 끝났다'는 일본 측 입장을 자세히 전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나온 직후 '징용공'이 강제성을 포함한 단어라면서 표현을 바꾸기로 했는데, 이런 지침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외교청서는 그러면서 한국 강제징용 소송의 원고가 "징용된 분은 아니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입장을 반영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이 언급된 것도 주목된다. 문 의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적지 않으면서 "극히 부적절한 발언을 행해 강하게 항의하면서 사죄와 철회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日 외교청서, 또 '독도=일본땅' 도발 |
일본 정부가 매년 반복하고 있는 독도 영유권 주장은 올해 외교청서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사적인 사실에 비춰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히 일본 고유의 영토다. 한국에 의한 불법점거가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이 행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동해와 관련해서도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한일 관계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다뤄진 부분은 민간 교류에 대해서였다.
한편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무역 갈등에 대해서는 일본이 승리했던 1심 상황만 반영되고 지난 12일 한국이 승리한 결과로 나온 상소기구의 판정은 다뤄지지 않았다.
日외교청서 '독도 일본땅' 반복…"일본해가 유일 호칭" 주장(CG) |
일본 정부가 이처럼 외교청서를 통해 한국에 대해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운 것은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국에 대한 강경 자세를 강조하면서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고 하는 최근의 행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베 정권은 지난 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사실상 한국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최근에는 오는 6월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얘기를 일본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징용공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을 일일이 건드리며 독도 영유권 주장까지 담은 이번 외교청서는 이미 악화 일로를 걷는 한일 간 갈등 상황을 한층 깊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일본 외교청서의 내용이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하고 일본 정부에 항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외교청서는 한국과의 갈등을 부각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에 대해서는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표현을 빼면서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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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본질적인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을 완화했고, 작년까지 사용했던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여 나갈 것"이라는 문장도 제외했다.
또 '북일 관계'라는 항목을 3년 만에 부활시키면서 아베 총리가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의 주요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힘을 줘 온 일본의 자세를 반영한 것이지만, 외교청서가 자국의 외교 정책을 제시하는 공식 문서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수준의 유화적 태도 변화는 파격적으로 평가된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서 일본만 제외돼 있다는 이른바 '재팬 패싱(일본 배제)' 논란 속에서 아베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아베 총리 스스로가 "다음은 나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 볼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고,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는 그동안 줄곧 사용해왔던 '대북 압력'이라는 표현도 쓰지 않고 있다.
외교청서에는 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와 거리를 좁히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도 두드러졌다.
영토 갈등지역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에 대해 이전에 사용하던 "일본에 귀속돼 있다"는 표현을 없앴고 대신 '평화조약'을 강조했다.
이 지역의 일본 반환을 꺼리는 러시아를 배려한 것으로, 일본 정부는 평화조약과 관련해서도 "미래지향적인 발상으로 평화조약 체결을 실현하겠다"는 기존 표현에서 힘을 빼 "문제를 해결해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말을 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작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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